자산 수백조 원의 협동조합 금융이 왜 「사회적경제」로 셈해지지 않는가.
들어가며
한국은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 이유에서 유용한 사례다. 하나는 개발도상국에서 출발해 제도를 빠르게 갖춘 경로를 보여 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속도가 만들어 낸 문제를 함께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 장의 중심 개념은 이중구조다. 한국에는 협동조합의 세계가 둘 있고, 두 세계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 한쪽에는 8개 개별법에 근거한 대규모 조직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으로 만들어진 조직들이 있다. 9강에서 본 상호금융이 「사회적경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2.1 두 개의 세계
[도식 12-1] 이중구조의 지형
[표 12-1] 두 세계의 대조
개별법 협동조합 | 기본법 협동조합 (2012~) | |
대상 | 농협 · 수협 · 산림조합 · 중소기업협동조합 · 신협 · 새마을금고 · 생협 · 엽연초 | 일반협동조합 · 사회적협동조합 |
형성 경로 | 정부 주도 · 각 산업정책의 일부로 설립 | 아래로부터 설립 가능 · 5인 이상 신고 |
규모 | 대규모 — 전국 조직 · 금융업 수행 | 대체로 소규모 |
금융업 | 가능 (각 개별법 근거) | 배제 (사회적협동조합의 소액대출 · 상호부조는 예외) |
성격 | 준공공기관적 성격을 함께 가짐 | 민간 자조 조직 |
「사회적경제」 통계 | 대체로 제외 | 포함 |
표의 마지막 행이 이 장의 문제의식이다. 새마을금고 하나의 총자산이 2025년 기준 286조 7천억 원 수준인데, 이 부문은 사회적경제 정책의 대상에서도 통계에서도 대체로 빠져 있다. 협동조합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이 협동조합 정책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12.2 기본법의 설계 — 성공과 그 대가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은 두 가지를 했다. 설립 문턱을 크게 낮춘 것과 사회적협동조합을 제도화한 것이다. 5인 이상이면 신고로 설립할 수 있게 한 것은 그 이전까지 개별법에 근거한 조합만 존재했던 상황에서 실질적인 전환이었다.
[도식 12-2] 설계와 결과
결과는 빠른 양적 성장이었다. 동시에 두 가지 문제가 따라왔다. 첫째는 높은 휴폐업률이다. 설립이 쉬운 만큼 사업 모델 없이 만들어진 조합도 많았다. 둘째는 지원 의존이다. 소규모 조합이 시장에서 자립하기 어려우므로 지원사업에 의존하게 되고, 정책이 바뀌면 부문 전체가 흔들린다.
그리고 설계 단계에서 내려진 두 결정이 이중구조를 고착시켰다. 금융·보험업을 배제한 것과 기존 개별법을 그대로 존치한 것이다. 전자는 라이파이젠 계보를 기본법 바깥에 두었고, 후자는 두 세계가 만날 통로를 만들지 않았다.
설립 문턱을 낮춘 것은 옳았는가
옳았다고 보는 근거 — 그 이전에는 협동조합을 만들 방법 자체가 없었다. 문턱을 낮추지 않았다면 부문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고 보는 근거 — 설립만 쉽게 하고 그다음을 설계하지 않았다. 3강의 표 3-3으로 말하면 「법 제도」 층은 옮겼는데 「교육 · 인력양성」 층은 만들지 않은 것이다. 11강의 에밀리아로마냐가 연합회와 발전기금으로 채운 자리가 한국에서는 정부 예산과 중간지원조직으로 채워졌다.
12.3 사회적기업 인증제 — 정의가 지위가 될 때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은 다른 방식의 문제를 낳았다. 법이 사회적기업을 정의하면서 「인증받은 자」라는 요건을 넣었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은 실체 개념이 아니라 법적 지위가 되었다.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며 사업을 하더라도 인증받지 않으면 사회적기업이 아닌 것이다.
[도식 12-3] 유형별 분포
[표 12-2] 다섯 유형과 쏠림의 이유
유형 | 내용 | 왜 이 유형에 몰리는가 |
일자리제공형 |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 | 인건비 지원 사업과 직접 연결되어 요건 충족과 지원이 일치한다 |
사회서비스제공형 |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 | 서비스 수요와 재원이 공공 조달에 묶여 있다 |
혼합형 | 위 두 가지를 함께 | 요건 충족이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
지역사회공헌형 | 지역 문제 해결 · 지역 자원 활용 | 성과 입증이 어렵고 지원 연계가 약하다 |
기타형 | 위 유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 심사 재량에 의존한다 |
주: 유형별 비중은 연도에 따라 변동하므로 고용노동부 ·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최신 공표 자료로 확인해 사용한다. 도식 12-3의 수치는 2013년 시점 자료다.
일자리제공형에 쏠리는 것은 조직의 선택이 아니라 정책 설계의 결과다. 인건비 지원이 주된 지원 수단이면 그 요건을 충족하는 유형이 선택된다. 6강의 강압적 동형화가 지원 제도를 통해 작동하는 전형적 형태다.
12.4 부처 분절
[도식 12-4] 여섯 부처, 하나의 부문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 소셜벤처는 중소벤처기업부, 농어촌공동체회사는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이다. 마을기업은 근거 법률 없이 지침으로 운영되어 왔다.
분절이 낳는 문제는 셋이다. 첫째, 현장에서 한 조직이 여러 지위를 중복 취득한다 — 협동조합이면서 사회적기업이면서 마을기업인 조직이 각각의 지원과 보고 의무를 진다. 둘째, 통계가 통합되지 않아 부문의 실제 규모를 알 수 없다. 셋째, 정책이 부처의 기존 사업 논리를 따라가므로 부문 전체의 관점에서 설계되지 않는다.
[표 12-3] 분절의 네 가지 결과
문제 | 현장에서 나타나는 형태 | 확인 방법 |
중복 지위 | 한 조직이 2~3개 지위를 보유하고 각각 보고 | 조직별 보유 지위 수의 분포 |
통계 미통합 | 부문 총 규모 · 고용 규모의 공식 수치 부재 | 부처별 통계의 정의 · 기준연도 대조 |
정책 분절 | 유사 사업의 중복과 사각지대 병존 | 지원사업 목록의 대상 · 목적 중복도 분석 |
부문 대표성 공백 | 부문 전체를 대표해 협의할 상대의 부재 | 정부 협의 기구의 구성과 소관 |
12.5 사회연대경제기본법 — 13년
[도식 12-5] 입법 경과
이 분절을 하나의 법으로 묶으려는 시도가 2013년 무렵부터 이어져 왔다. 법안 명칭은 「사회적경제기본법」에서 「사회연대경제기본법」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13주차에서 다룰 국제 용어(social and solidarity economy)를 따른 결과다.
제22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들이 통합 조정되어 2026년 3월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대안으로 의결되었고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도 마쳤다. 그러나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면서 계류 상태에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연의 원인은 법안 내용이 아니라 국회 일정과 정치적 대치 구조로 설명된다.
이 경과가 이 강의에 주는 교훈은 6강의 제도 3층 논의와 연결된다. 가장 옮기기 쉽다는 「공식 규칙」층조차 13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비공식 규범과 집행 특성은 얼마나 걸리겠는가. 「법만 만들면 된다」는 접근이 왜 실패하는지에 대한 실물 증거다.
12.6 성과와 대가
[표 12-4] 균형 있는 평가
성과 | 대가 | |
속도 | 20년 안에 법 · 지원체계 · 중간지원조직을 갖췄다 | 축적 없이 형식이 먼저 생겼다 |
규모 | 조직 수의 빠른 증가 | 휴폐업률이 높고 평균 규모가 작다 |
재원 | 안정적 정부 예산 확보 | 정책 변동에 취약 · 지원 의존 |
주도성 | 정부가 부문 형성을 견인 | 현장 주도성이 약하다 · 11강의 공동구성과 대비된다 |
범위 | 다양한 조직 형태를 제도화 | 부처 분절 · 이중구조가 고착 |
이 표를 균형 있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경험을 실패로 규정하면 배울 것이 없고, 성공으로 규정하면 그대로 옮기려 하게 된다. 정확한 서술은 「빠른 제도화에는 대가가 따랐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 지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가를 알고 시작하는 나라는 다른 순서를 택할 수 있다.
핵심 정리
1.
한국에는 협동조합의 세계가 둘 있다. 8개 개별법에 근거한 대규모 조직들과 2012년 기본법으로 만들어진 조직들이며, 두 세계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
2.
기본법이 금융 · 보험업을 배제하고 기존 개별법을 존치한 것이 이중구조를 고착시켰다. 자산 수백조 원의 협동조합 금융이 사회적경제 통계에서 빠지는 이유다.
3.
설립 문턱을 낮춘 것은 성공이었으나 그다음을 설계하지 않았다. 에밀리아로마냐가 연합회와 발전기금으로 채운 자리를 한국에서는 정부 예산과 중간지원조직이 채웠다.
4.
사회적기업 육성법의 인증제는 사회적기업을 실체 개념이 아니라 법적 지위로 만들었다. 일자리제공형 쏠림은 조직의 선택이 아니라 지원 수단 설계의 결과다.
5.
여섯 부처 분절은 중복 지위 · 통계 미통합 · 정책 분절 · 부문 대표성 공백을 낳는다. 이를 통합하려는 기본법은 13년째 입법되지 않고 있다.
생각해볼 문제
1.
국가가 「사회적」인지를 인증하는 제도는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갖는가. 당신 나라에 도입한다면 누가 심사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겠는가.
2.
대규모 협동조합(농협 · 새마을금고)과 소규모 협동조합을 하나의 정책 범주에 담을 수 있는가. 담아야 하는가. 담는다면 지원 정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3.
정부 주도로 짧은 기간에 많은 조합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성공인가. 판단하려면 무엇을 더 봐야 하는가 — 생존율인가, 조합원 참여인가, 매출 자립도인가.
4.
인증제 아래에서 「인증받지 않은 사회적기업」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이 명명의 문제가 실제 정책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가.
5.
부처 분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a) 기본법 제정 (b) 총괄 부처 지정 (c) 지자체 단위 통합 창구 가운데 무엇이 현실적인가. 각각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6.
13년 동안 입법되지 않은 법이 마침내 통과된다면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가. 6강의 제도 3층 논의로 답하라.
논의 주제
아래 주제는 3~5인 조별 토론용이다. 각 조는 결론과 함께 「반대 입장에서 나올 가장 강한 반론」을 하나씩 정리해 발표한다.
주제 1. 빠른 제도화는 옳은 선택이었는가
한국은 20년 안에 법과 지원체계를 갖췄다. 이탈리아는 100년이 걸렸다. 축적 없이 형식을 먼저 만드는 전략은 후발국에게 합리적인가, 아니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는가. 대가를 줄이면서 속도를 내는 방법이 있는가.
주제 2. 협동조합 금융을 부문에 포함해야 하는가
새마을금고와 신협을 사회적경제 부문에 포함하면 부문의 규모와 위상이 달라진다. 동시에 이들 조직은 준공공기관적 성격과 상업적 경쟁 압력을 함께 갖는다. 포함이 부문에 이익인가 부담인가. 이들 조직은 포함되기를 원하는가.
주제 3. 지원 없는 부문이 가능한가
지원 의존이 문제라면 지원을 줄여야 하는가. 그러나 지원을 줄이면 상당수 조직이 사라진다. 사라지는 조직 가운데 사라져도 되는 것과 지켜야 하는 것을 구별할 기준이 있는가.
주제 4. 인증제 없이 정의할 수 있는가
인증제의 대안은 실체 요건에 따른 자기 선언과 사후 검증이다. 이 방식은 문턱을 낮추지만 남용 가능성을 연다. 당신 나라에서 어느 쪽이 더 큰 위험인가.
PBL 문제해결 과제
과제 — 자국 협동조합 법제 조사와 한국과의 대조
요구 산출물: (1) 자국의 협동조합 관련 법률을 조사해 다음을 정리한다 — 몇 개의 법이 있는가, 소관 부처는 몇 곳인가, 금융업이 허용되는가, 설립은 신고인가 인가인가, 인증 · 지정 제도가 있는가. (2) 표 12-1의 형식으로 자국에 이중구조 또는 분절이 존재하는지 진단한다. (3) 존재한다면 그 원인이 한국과 같은지 다른지 — 개별법의 역사인가, 부처 관할인가, 다른 요인인가. (4) 한국의 기본법 협동조합 휴폐업률이 높은 반면 유럽 협동조합의 생존율은 일반 기업보다 높다는 대조에 대해 가설을 셋 세우고 각각을 검증할 방법을 제시한다. (5) 자국에 기본법 성격의 통합법을 만든다면 반드시 넣어야 할 조항 세 개와 넣지 말아야 할 조항 하나.
분량과 형식: A4 4쪽 이내. 조별 작성 후 30분 발표 및 교차 질의.
실습 — 이중구조 진단표 작성
자국의 협동조합 · 상호부조 성격 조직을 다섯 개 이상 나열하고, 각각에 대해 다음을 표기한다. ① 근거법 ② 소관 부처 ③ 설립 방식(신고 · 인가 · 지정) ④ 금융업 수행 여부 ⑤ 정부 통계에서 「사회적경제」로 분류되는가. 다섯 열을 채운 뒤 ⑤에서 「아니오」가 나온 조직들의 공통점을 찾는다. 그 공통점이 그 나라 이중구조의 축이다. 이 표는 13주차 OECD 아홉 항목 진단표의 「데이터」 항목과 15주차 최종 발표에 사용된다.
핵심 개념 | 이중구조 dual structure · 개별법 협동조합 · 협동조합기본법(2012) · 인증제 certification system · 일자리제공형 · 부처 분절 administrative fragmentation · 중간지원조직 intermediary support organization · 지원 의존 grant dependence · 사회연대경제기본법 |
더 읽을거리
•
협동조합기본법 및 사회적기업 육성법 조문. — 12.2~12.3절의 근거. 현행 법령으로 확인할 것.
•
사회연대경제기본법안(계류) 및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심사 자료. — 12.5절의 근거.
•
고용노동부 ·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 인증 현황 및 실태조사. — 표 12-2 · 도식 12-3의 갱신 자료.
•
행정안전부, 「새마을금고 2025년 영업실적(잠정)」. — 12.1절 자산 규모의 출처.
•
윤상용 (2013), 「소상공인 정책자금 효율성 제고에 관한 연구」, 중소기업연구 35(4). — 정책자금 설계와 대상 선정 문제.
•
고용노동부, 「2026년도 사회적기업 정책 방향」(2025.12). — 최신 정책 기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