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협동조합은 왜 일반 기업을 닮아가는가. 그리고 법은 같은데 왜 결과가 다른가.
들어가며
3강에서 같은 제도를 옮겼는데 결과가 달랐다는 것을 보았다. 4강에서는 이용자 소유가 형식만 남는 경로를 보았다. 이 장은 그 두 관찰을 하나의 이론 언어로 묶는다. 신제도주의, 특히 조직사회학의 동형화 개념이 그 언어다.
여기서 다루는 현상은 실무자에게 익숙한 것이다. 지역 금융협동조합이 담보대출 중심으로 바뀌고,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이 대출 규모를 키우며, 사회적기업이 일반 기업과 구별되지 않게 된다. 이것을 「초심을 잃었다」고 말하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놓인 장(field)의 압력이기 때문이다.
6.1 신제도주의의 세 갈래
[도식 6-1] 같은 이름, 다른 질문
[표 6-1] 세 갈래의 대조
합리적선택 신제도주의 | 역사적 신제도주의 | 사회학적 신제도주의 | |
대표 논자 | 노스 · 윌리엄슨 · 오스트롬 | 스카치폴 · 텔렌 · 피어슨 | 마이어 · 로완 · 디마지오 · 파월 |
제도란 | 행위를 제약하는 규칙과 유인 구조 | 권력관계의 역사적 침전물 | 당연시되는 의미 체계 |
변화의 동인 | 거래비용 절감 · 효율 | 결절적 국면 · 점진적 층화 | 정당성 추구 · 모방 |
협동조합에 던지는 질문 | 어떤 조건에서 이 조직이 효율적인가 | 왜 이 나라에는 이 형태만 남았는가 | 왜 서로 닮아가는가 |
이 강의는 세 갈래를 모두 쓰지만 비중이 다르다. 1·4강의 소유이론은 첫 번째 갈래에, 3강의 이식 논의와 12강의 한국 이중구조는 두 번째 갈래에, 그리고 이 장은 세 번째 갈래에 서 있다. 협동조합의 변질을 설명하는 언어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6.2 동형화 — 조직은 왜 서로 닮아가는가
디마지오와 파월(DiMaggio & Powell, 1983)의 명제는 이렇다. 조직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당성을 얻기 위해 서로 닮아간다. 닮아간 조직은 자원을 얻기 쉽고, 감독기관의 신뢰를 얻으며, 인력을 채용하기 쉽다. 효율과 무관하게 닮아가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도식 6-2] 동형화의 세 경로
[표 6-2] 동형화의 세 경로와 관찰 지표
경로 | 압력의 출처 | 금융협동조합에서의 형태 | 관찰 지표 |
강압적 coercive | 규제 · 감독 · 자금 제공자의 조건 | 상업은행과 동일한 건전성 지표 적용 · 동일 회계기준 | 규제 준수 항목 중 조직 특성이 반영된 비율 |
모방적 mimetic | 불확실성 아래 성공한 조직의 모방 | 성장하는 은행의 담보대출 중심 영업을 복제 | 담보대출 비중 · 신규 상품의 출처 |
규범적 normative | 전문직화 · 자격증 · 교육 체계 | 금융권 출신 전문경영인 영입 · 동일한 성과평가 체계 | 임원의 이전 경력 분포 · 성과급 지표 구성 |
동형화는 나쁜 것인가
전문경영을 도입하고 회계를 표준화하고 위험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은 조직의 성숙이기도 하다. 동형화라는 개념이 그 자체로 비판인 것은 아니다.
구분의 기준은 하나다. 그 변화가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편익을 늘리는가, 아니면 조합원과 무관한 지표를 개선하는가. 담보대출 확대로 수익성이 좋아졌는데 조합원 대출 접근성은 나빠졌다면, 그것은 성숙이 아니라 표류다. 6.3절에서 이 구분을 측정 가능하게 만든다.
6.3 사명 표류와 퇴화
동형화가 조직의 형태에 관한 개념이라면, 사명 표류(mission drift)와 퇴화(degeneration)는 조직의 목적에 관한 개념이다. 둘은 서로 다른 현상이다.
사명 표류는 대상 집단이 바뀌는 것이다. 마이크로파이낸스 연구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대리지표는 평균 대출규모의 증가다. 같은 기관이 더 큰 금액을 빌려준다는 것은 더 나은 고객에게 옮겨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표 하나로는 부족하다. 기존 고객의 사업이 성장해 대출이 커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식 6-3] 사명 표류의 관찰
퇴화는 소유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노동자협동조합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사업이 잘되면 인력을 늘려야 하는데, 신규 조합원을 받으면 기존 조합원의 1인당 몫이 줄어든다. 그래서 조합원 대신 임금노동자를 고용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조합원은 소수 지분 보유자가 되며 조직은 사실상 주식회사가 된다. 8주차에서 실제 사례로 다룬다.
[표 6-3] 두 개의 다른 변질
사명 표류 mission drift | 퇴화 degeneration | |
무엇이 바뀌는가 | 서비스 대상 집단 | 소유와 통제의 구조 |
전형적 조직 | 마이크로파이낸스 · 사회적기업 | 노동자협동조합 · 생산자협동조합 |
측정 지표 | 평균 대출규모 · 최빈층 비중 · 신규 고객 구성 | 조합원 대비 비조합원 노동자 비율 · 신규 조합원 가입률 |
구조적 원인 | 지속가능성 압력 · 상업 자금 조달 | 1인당 잉여 극대화 유인 · 자본조달 제약 |
대응 장치 | 이중 목표의 공식화 · 성과지표 병행 관리 | 가입 의무 규정 · 자산잠금 · 비조합원 고용 상한 |
6.4 법은 있는데 왜 작동하지 않는가
노스(North)는 제도를 세 층으로 구분했다. 공식 규칙, 비공식 규범, 그리고 집행 특성이다. 이 구분이 실무적으로 유용한 이유는 세 층의 이전 가능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도식 6-4] 제도의 세 층
협동조합법을 도입한 나라에서 등록 건수가 미미하거나, 등록은 많은데 활동이 없는 현상은 위층만 옮기고 아래 두 층이 따라오지 않은 결과다. 이것이 법과 실행의 격차(de jure–de facto gap)이며, 3강 표 3-3의 「법 제도」 층이 왜 효과가 짧은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진단 질문 세 개
① 공식 규칙 — 법과 시행령에 필요한 조항이 있는가.
② 비공식 규범 — 그 조항이 전제하는 관행(예: 총회에서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것, 연체를 이웃에게 요구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③ 집행 특성 — 위반이 적발되는가, 적발되면 제재가 실행되는가, 제재가 실행되면 그것이 알려지는가.
세 질문 중 ②와 ③에 「아니오」가 나오면 법 개정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13주차 국가 진단에서 이 세 질문을 다시 사용한다.
6.5 변질을 막는 장치 — 자산잠금
변질을 막는 여러 장치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고 가장 논쟁적인 것이 자산잠금(asset lock)이다. 조직이 축적한 자산을 조합원 개인이 나눠 가질 수 없게 묶는 장치다.
[도식 6-5] 자산잠금이 막는 것
[표 6-4] 자산잠금의 여러 형태
제도 | 국가 · 형태 | 잠금의 내용 |
Community Interest Company (CIC) | 영국 | 자산 이전 제한 · 배당 상한 · 해산 시 자산이 다른 자산잠금 조직으로 이전 |
사회적협동조합 | 이탈리아 · 한국 | 배당 금지 · 잔여재산의 유사 목적 조직 또는 국고 귀속 |
분할 불가능 적립금 | 이탈리아 · 프랑스 등 | 적립금은 어떤 경우에도 조합원에게 분배되지 않는다 |
Community Land Trust | 영국 · 미국 | 재판매 가격 공식으로 시세 차익의 사유화를 제한 |
자산잠금은 대가를 치른다. 조합원의 재산권을 제한하므로 출자 유인이 줄고, 조직이 어려울 때 자산을 처분해 위기를 넘길 유연성도 줄어든다. 그럼에도 이 장치가 확산된 것은 그것 없이는 성공한 조직이 해산으로 끝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주택조합(building society)의 대규모 주식회사 전환이 그 대표적 경험이었다.
핵심 정리
1.
협동조합의 변질은 개인의 초심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놓인 장의 압력이다. 조직은 효율이 아니라 정당성을 얻기 위해 서로 닮아간다.
2.
동형화는 강압적 · 모방적 · 규범적 세 경로로 일어난다. 각 경로에는 관찰 가능한 지표가 있으므로 진단이 가능하다.
3.
사명 표류는 대상 집단이 바뀌는 것이고 퇴화는 소유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원인도 대응 장치도 다르므로 구별해야 한다.
4.
제도는 공식 규칙 · 비공식 규범 · 집행 특성의 세 층으로 이루어진다. 위층만 옮기면 법과 실행의 격차가 생긴다.
5.
자산잠금은 변질을 막는 대신 출자 유인과 재무적 유연성을 희생한다. 이 교환을 명시하지 않은 제도 설계는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된다.
생각해볼 문제
1.
당신의 나라에서 「법은 있는데 작동하지 않는」 제도를 하나 들고, 노스의 세 층 가운데 무엇이 빠져 있는지 진단하라.
2.
동형화는 나쁜 것인가. 협동조합이 전문경영을 도입하고 회계를 표준화하는 것은 변질인가 성숙인가. 둘을 구별할 관찰 가능한 기준을 하나 제시하라.
3.
자산잠금은 조합원의 재산권을 제한한다.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정당화된다면 그 논거는 세대 간 형평인가, 공적 지원에 대한 대가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4.
사명 표류의 대리지표로 평균 대출규모가 널리 쓰인다. 이 지표가 잘못된 결론을 낳을 수 있는 상황을 두 가지 들어 보라. 무엇을 함께 봐야 하는가.
5.
규범적 동형화는 전문직 교육과 자격증을 통해 일어난다. 그렇다면 협동조합 부문이 자기 교육기관을 갖는 것은 동형화를 막는 장치가 되는가. 3강의 안티고니시 사례와 연결해 보라.
6.
어떤 사회적기업이 매출의 90%를 정부 조달에서 얻고 있다. 이것은 강압적 동형화의 사례인가. 조직은 무엇을 잃고 있는가.
논의 주제
아래 주제는 3~5인 조별 토론용이다. 각 조는 결론과 함께 「반대 입장에서 나올 가장 강한 반론」을 하나씩 정리해 발표한다.
주제 1. 변질 없이 성장할 수 있는가
규모가 커지면 전문화가 필요하고, 전문화되면 동형화 압력이 커진다. 그렇다면 「작게 남는 것」이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가. 규모를 키우면서 정체성을 유지한 사례가 있다면 무엇이 달랐는가.
주제 2. 이중 목표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사회적 목표와 재무적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조직에서, 두 목표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할지 사전에 정해 두는 것이 가능한가. 정해 둔다면 어떤 형식으로 — 정관인가, 성과지표인가, 이사회 구성인가.
주제 3. 규제는 조직 형태를 고려해야 하는가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관철하면 강압적 동형화가 불가피해진다. 협동조합에 다른 규제를 적용하면 규제차익이 생긴다. 어느 쪽 비용이 더 큰가. 9주차 금융협동조합 규제 논쟁의 예습이다.
주제 4. 자산잠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산잠금은 현재 조합원의 권리를 제한해 미래 세대의 이익을 지킨다. 그런데 미래 세대는 그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현재 조합원은 참여했다. 이 비대칭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공적 자금이 투입된 조직과 순수 자조 조직에서 답이 달라지는가.
PBL 문제해결 과제
과제 — 동형화인가 표류인가 판정하기
상황: 지역 금융협동조합의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이 10년간 30%에서 70%로 늘었다. 같은 기간 총자산은 2.1배, 당기순이익은 3.4배 늘었고 연체율은 하락했다. 조합원 수는 12% 늘었으나 신규 조합원의 평균 거래액은 기존 조합원의 절반이다. 신용대출 건수는 절반으로 줄었고, 대출 거절 건수 통계는 관리되고 있지 않다.
요구 산출물: (1) 이 변화를 ① 경영 개선 ② 동형화 ③ 사명 표류 가운데 무엇으로 볼 것인지와 판단 기준, (2) 판단에 필요한데 현재 없는 자료의 목록과 확보 방안, (3) 표 6-2의 세 경로 가운데 어느 압력이 지배적이었는지에 대한 추론과 근거, (4) 금융협동조합 · 사회적기업 · 마이크로파이낸스 각각에 대해 사명 표류를 측정할 지표를 하나씩 설계하고 각 지표가 조작될 수 있는 경로도 함께 적을 것.
분량과 형식: A4 3쪽 이내. 조별 작성 후 30분 발표 및 교차 질의.
실습 — 자국 제도의 세 층 진단
각자 자국의 협동조합 또는 사회적경제 관련 법률을 하나 고른다. 없다면 유사한 조직에 적용되는 법을 고른다. 노스의 세 층에 대해 각각 다음을 채운다 — ① 공식 규칙: 조문에 무엇이 규정되어 있는가. ② 비공식 규범: 그 조문이 전제하는 관행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그 자리에 있는가. ③ 집행 특성: 최근 3년간 위반 적발 건수와 제재 실행 건수를 구할 수 있는가. 구할 수 없다면 그 사실 자체가 집행 특성에 대한 정보다. 마지막으로 이 법의 「법과 실행의 격차」를 한 문단으로 진술한다.
핵심 개념 | 동형화 isomorphism · 강압적 · 모방적 · 규범적 동형화 · 정당성 legitimacy · 조직장 organizational field · 사명 표류 mission drift · 퇴화 degeneration · 탈상호화 demutualization · 법과 실행의 격차 de jure–de facto gap · 자산잠금 asset lock · 경로의존 path dependence |
더 읽을거리
•
DiMaggio, P. and W. Powell (1983), “The Iron Cage Revisited: Institutional Isomorphism and Collective Rationality in Organizational Field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48(2). — 6.2절의 원전.
•
North, D.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5장. — 6.4절 세 층 구분.
•
Thelen, K. (2004), How Institutions Evolve, 점진적 제도변화(층화 · 전환 · 표류 · 대체) 부분. — 역사적 신제도주의의 최신 정리.
•
Cornforth, C. (1995), “Patterns of Cooperative Management: Beyond the Degeneration Thesis,” Economic and Industrial Democracy 16(4). — 퇴화 명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
•
Armendáriz, B. and A. Szafarz (2011), “On Mission Drift in Microfinance Institutions.” — 사명 표류 측정 논쟁의 정리.
•
윤상용 (2023), 「서민금융기관의 부동산담보대출 증가가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 경영연구 38(1). — PBL 과제의 실증적 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