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모바일머니가 바꾼 것
2007년 케냐에서 시작된 M-Pesa는 은행 계좌 없이도 송금과 결제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그러나 같은 모델이 모든 나라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케냐의 성공에는 네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 통신시장의 집중이다. 지배적 통신사가 존재해 전국 단위 네트워크 효과를 단기간에 만들 수 있었다. 둘째, 규제당국의 허용이다. 중앙은행이 비은행 사업자의 결제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허용했다. 은행업 인가를 요구했다면 출발 자체가 불가능했다. 셋째, 대리점망이다. 현금과 전자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소매점 네트워크가 있었다. 디지털의 성패는 실제로는 오프라인 접점이 결정한다. 넷째, 기존 송금 수요다. 도시 노동자가 농촌 가족에게 보내는 국내 송금 수요가 이미 크게 존재했다. 새로운 수요를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수요를 옮긴 것이다.
네 조건 가운데 대리점망과 송금 수요는 대부분의 나라에 존재한다. 그러나 통신시장 구조와 규제 허용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따라서 “M-Pesa 모델을 도입하자”는 제안은 대개 규제 결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술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인 것이다.
그림 7. 세계 성인의 금융계좌 보유율 추이
2011년 51%였던 세계 성인 계좌보유율은 2024년 조사 기준 79%로 상승했다. 다만 두 가지에 유의해야 한다.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모바일머니 계좌라는 점, 그리고 2017년 이후 상승 폭이 완만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은 미보유층은 구조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집단이기 때문이다.
【학술 쟁점 8】 디지털 금융포용은 포용인가, 새로운 배제인가
논점 — 모바일머니와 디지털 대출의 확산이 실질적 후생을 개선했는가.
입장 A (긍정) — 잭과 수리(Jack & Suri, 2014, American Economic Review)는 케냐 M-Pesa가 거래비용을 낮춰 가구 간 위험 분담을 개선했음을 보였고, 수리와 잭(2016, Science)은 모바일머니 접근이 장기적으로 빈곤 감소와 직업 전환에 기여했다고 보고했다.
입장 B (신중론) — 계좌 보유의 증가가 곧 이용의 증가는 아니며, 디지털 소액대출은 초단기·고금리 구조로 과다채무를 재생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앱 권한을 통한 연락처 기반 회수는 사회적 제재를 자동화한 것이며, 알고리즘 평가는 거절 사유를 설명하지 못해 이의제기를 봉쇄한다.
증거의 상태 — 케냐 사례의 긍정적 추정치에 대해서는 표본과 식별 전략을 둘러싼 재검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디지털 대출의 부작용에 관한 증거는 주로 감독기관 자료와 현장 조사에서 나오며, 인과 추정은 아직 초기 단계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 “포용된 배제(inclusive exclusion)” — 계좌는 있으나 고비용·저품질 서비스에 갇히는 상태 — 를 측정할 표준 지표가 없다. 국제 지표 체계가 계좌 보유에서 이용과 금융건전성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품질을 재는 합의된 방법은 아직 없다.
6.2 대안정보 신용평가
신용 기록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는 1장에서 제기한 정보 비대칭 문제의 21세기 판본이다. 통신 데이터, 상권 데이터, 거래 데이터, 심리·행태 측정, 소셜 그래프 등이 대안적 정보원으로 검토되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실증적 사실이 있다. 대안정보를 더 많이 모은다고 해서 예측력이 자동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연구 중에는 지역신용보증재단 자료를 이용해 비재무 가점 정보를 추가했을 때 부도 예측력이 외부 신용평가등급 이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있다. 반면 개인 신용등급에 상권 정보를 결합했을 때는 사고 예측력이 개선되었고 특히 저신용 구간에서 효과가 컸다는 결과도 있다. 즉 핵심은 “정보를 더 모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인가”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예측력과 설명가능성의 긴장이다. 머신러닝 모형은 예측 정확도를 높이지만, 거절 사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이의제기와 구제가 불가능해진다. 성별이나 지역 같은 보호 속성의 대리변수가 모형에 숨어들 수도 있다. 따라서 ① 모형 산출을 최종 결정이 아니라 참고자료로 위치시키고, ② 거절 시 주요 사유를 고객에게 제공하며, ③ 보호 속성에 대한 차별 영향을 정기적으로 검증하고, ④ 모형 문서와 검증 이력을 감독기관에 제출 가능한 형태로 유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6.3 디지털 공공인프라
민간 앱이 아니라 공공이 깔아야 하는 층이 있다. 국제적으로 디지털 공공인프라(DPI)라 불리는 세 개의 층이 그것이다.
그림 8. 디지털 공공인프라의 3층 구조
1층은 신원층이다. 고유하고 검증 가능한 디지털 신원이 없으면 고객확인(KYC) 비용이 모든 금융서비스의 진입장벽이 된다. 2층은 결제층으로, 실시간·저비용이면서 기관 간 상호운용이 가능한 소액결제 인프라를 말한다. 3층은 데이터 공유층으로, 본인 동의 하에 금융·통신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규격이다.
이 세 층은 순서가 있다. 아래층 없이 위층은 작동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기에 각국이 현금 지원을 얼마나 신속히 집행할 수 있었는지는 이 3층의 완비 수준과 거의 비례했다. 디지털 공공인프라는 금융포용 인프라이자 동시에 재난 대응 인프라인 것이다.
6.4 남겨지는 사람들
디지털화는 평균적 접근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특정 집단의 배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휴대폰 소유와 인터넷 이용에서 나타나는 성별 격차, 문자와 숫자 이해를 전제하는 앱 인터페이스로 인한 문해력 격차, 전력과 통신망이 닿지 않는 지역의 인프라 격차, 그리고 한 번의 사기 피해가 집단 전체의 이용 중단으로 이어지는 신뢰의 문제가 그것이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포용된 배제(inclusive exclusion)”라 불리는 현상이다. 계좌는 생겼으나 고비용·저품질 서비스에 갇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지표는 개선되지만 실질은 악화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