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두 개의 계보
금융기관이 담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이유는 네 가지 장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선별의 문제다. 대출 신청자 중 누가 갚을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이때 금리를 올리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서라도 빌리려는 사람은 대체로 위험한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면 안전한 차입자가 먼저 시장을 떠나고 위험한 차입자만 남는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역선택(adverse selection) 이라 부른다.
두 번째는 감시의 문제다. 돈을 빌려준 뒤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지 관찰할 수 없다. 사업 자금으로 빌린 돈이 병원비나 혼례비로 쓰일 수도 있고, 차입자가 노력을 게을리할 수도 있다. 이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라 한다.
세 번째는 집행의 문제다. 갚지 않아도 압류할 자산이 없고, 소송 비용이 대출 원금보다 크다면 계약은 사실상 강제할 수 없다.
네 번째는 비용의 문제다. 10만 원을 빌려주는 데 드는 심사와 관리 비용이 1억 원을 빌려주는 비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액 대출은 구조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림 2. 네 가지 장벽과 그에 대응하는 장치
이 네 장벽이 함께 작동한 결과, 금융시장은 가격이 아니라 수량으로 조정된다. 즉 금리를 올려서 위험을 감당하는 대신, 아예 거절해 버린다. 이를 신용할당(credit rationing) 이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빈곤층이 금융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방글라데시·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계를 1년간 추적한 연구 『가난한 사람의 포트폴리오(Portfolios of the Poor)』(2009)는 저소득 가구가 평균 8개에서 10개에 이르는 금융 수단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계(契)와 유사한 회전형 저축조직, 전당포, 대금업자, 상인이 제공하는 외상 등이 그것이다. 이들이 겪는 문제는 금융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접근할 수 있는 금융이 지나치게 비싸고 불안정하다는 데 있었다.
2.1.1 유럽의 원형
현대적 의미의 소액금융이 처음 체계화된 것은 1849년 독일 농촌에서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라이파이젠(F. W. Raiffeisen)은 1846~47년 라인란트 대기근 이후 고리대에 시달리던 농민들을 조직해 신용조합을 만들었다. 그가 설계한 조합은 다섯 가지 원리로 작동했다.
첫째는 무한연대책임이다. 조합원 전원이 조합의 채무 전부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이렇게 하면 조합원들은 누구를 받아들일지, 누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스스로 감시할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된다. 앞서 본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벽에 대한 대응이다.
둘째는 지역 한정이다. 조합의 영업 범위를 한 마을 또는 한 교구로 엄격히 제한했다. 서로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조합을 구성하면 정보를 얻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네 번째 장벽에 대한 대응이다.
셋째는 무배당과 적립이다. 잉여가 생겨도 조합원에게 나누지 않고 적립했다. 조합을 해산해서 이익을 챙길 유인이 사라지고, 자본이 축적된다.
넷째는 무보수 경영이다. 임원이 보수를 받지 않으므로 운영비가 낮아지고, 소액 대출의 수지가 맞게 된다.
다섯째는 도덕적 심사다. 담보가 아니라 근면성, 평판, 자금의 용도를 보고 대출을 결정했다. 물적 담보를 사회적 평판으로 대체한 것이다.
한편 같은 시기 독일 도시에서는 슐체-델리치(Schulze-Delitzsch)가 다른 형태의 신용조합을 만들었다. 도시 수공업자를 대상으로 한 이 조합은 유한책임을 채택하고 출자금을 요구했으며 배당도 실시했다. 두 모델의 차이는 이념이 아니라 인구 이동성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이 이동하지 않는 농촌에서는 무한책임이 작동하지만, 이동성이 높은 도시에서는 출자금이라는 물적 담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표. 라이파이젠형과 슐체-델리치형의 비교
항목 | 라이파이젠형 (농촌) | 슐체-델리치형 (도시) |
대상 | 소농·농촌 주민 | 도시 수공업자·소상인 |
책임 | 무한책임 | 유한책임(출자금 한도) |
출자 | 최소한 또는 없음 | 상당한 출자금 요구 |
잉여 배분 | 무배당·전액 적립 | 출자 배당 실시 |
영업 구역 | 한 마을·교구로 제한 | 도시 단위로 확대 가능 |
경영 | 무보수 자원봉사 | 유급 전문 경영 |
오늘날의 계보 | 신용협동조합, 마을금고, SACCO | 협동조합은행, 상호저축은행 |
2.1.2 이식의 성공과 실패
라이파이젠의 설계도는 반세기 만에 네 대륙으로 퍼졌다. 그런데 결과는 지역마다 극명하게 갈렸다.
그림. 협동조합 금융의 확산 (1844~1963)
아일랜드에서는 1894년 아일랜드농업조직협회(IAOS)가 라이파이젠 모델을 도입했으나 1914년 무렵 사실상 소멸했다. 경제사학자 티모시 기넌(Timothy Guinnane)은 그 원인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독일 마을과 달리 이웃에 대한 상환 압력이 형성되지 않아 무한책임 조항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 둘째, 상점을 겸한 대금업자들이 이미 촘촘한 관계형 신용망을 갖고 있어 조합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지 못했다. 셋째, 조합원의 저축이 아니라 정부와 중앙기구의 대출로 재원을 마련했기 때문에 “자기 돈”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감시 유인도 약했다. 넷째, 회계와 감사를 수행할 인력이 부족했다.[1]
벵골(영국령 인도)에서는 1904년 협동조합신용조합법 제정 이후 조합 수가 빠르게 늘었으나 부실이 누적되었다. 원인은 아일랜드와 겹치면서도 달랐다. 조합은 주민의 필요가 아니라 식민 행정의 실적 지표에 따라 설립되었고, 마을의 기존 지주-소작 권력관계가 조합 운영에 그대로 재생산되어 대출이 유력자에게 집중되었다. 여기서도 조합원 예금 기반 없이 상급기관 자금으로 대출부터 시작했으며, 조합 수의 증가 속도를 감독 역량이 따라가지 못했다.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실패의 공통된 구조가 드러난다.
1.
필요가 아니라 계획에서 출발했다. 조합원이 조직을 원한 것이 아니라 외부가 조직을 만들었다. 소유 의식이 형성되지 않는다.
2.
저축이 아니라 대출로 시작했다. 자기 돈이 걸려 있지 않으면 감시하지 않는다. 외부 자금은 규율을 약화시킨다.
3.
제재를 실행할 사회가 없었다. 무한책임은 계약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집행한다. 공동체가 없으면 조항은 종이에 그친다.
이 세 가지는 오늘날 개발협력 사업의 실패 양상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공여기관의 계획으로 만들어진 조합, 외부 자금으로 시작하는 대출, 제재를 집행할 지역 조직의 부재가 그것이다.
【학술 쟁점 1】 아일랜드 실패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논점 — 라이파이젠 모델이 아일랜드에서 실패한 근본 원인은 사회적 조건인가, 시장 구조인가.
입장 A (사회적 제재론) — 기넌(Guinnane, 1994)의 설명이다. 독일 마을에서는 조합원 간 상호 감시와 평판 제재가 작동했으나 아일랜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무한책임은 법적 조항이 아니라 공동체가 집행하는 규범이며, 그 규범이 없으면 계약은 공허해진다.
입장 B (시장구조론) — 아일랜드 농촌에는 이미 상점주 겸 대금업자가 제공하는 관계형 신용망이 촘촘히 존재했다. 이들은 농민의 사정을 잘 알았고 유연한 상환을 허용했다. 새 조합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실패의 원인은 “사회적 자본의 부재”가 아니라 “기존 대안의 존재”다.
증거의 상태 — 두 설명은 배타적이지 않으며, 기넌 자신도 양쪽을 함께 제시한다. 다만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정책 함의가 정반대가 된다. A를 택하면 처방은 “공동체 조직화”이고, B를 택하면 “기존 비공식 금융과의 경쟁 조건 분석”이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 “사회적 자본”이라는 설명 변수 자체가 순환논법이라는 비판이 있다. 성공한 곳에 사회적 자본이 있었다고 사후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한다. 사전에 관측 가능한 지표로 사회적 자본을 조작적으로 정의하는 작업은 아직 미완이다.
2.1.3 성공한 이식의 조건
반면 성공한 사례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캐나다 퀘벡에서 1900년 알퐁스 데자르댕이 설립한 카스 포퓔레르(caisse populaire)는 프랑스계 가톨릭 공동체의 본당(parish) 조직을 통로로 삼았다. 본당이 라이파이젠 모델의 “지역 한정” 원리를 대신 수행한 셈이다. 1920~30년대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전개된 안티고니시 운동은 세인트프랜시스자비어 대학교의 성인교육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이 운동은 “조직에 앞서 교육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 아래 학습모임을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조합을 세우는 순서를 택했다.
한국의 신용협동조합은 바로 이 안티고니시 계보에서 직접 유래한다. 1960년 부산에서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설립한 성가신용협동조합이 그 출발점이며, 1963년에는 지역 자생 조직으로 마을금고가 시작되었다. 이후 신용협동조합법(1972)과 새마을금고법(1982)이 제정되면서 제도적 기반이 갖춰졌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영어권 문헌은 새마을금고의 설립 시점과 성격을 반복적으로 잘못 인용해 왔다. 1963년 마을금고의 출발과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혼동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 연구자의 부주의라기보다, 영어권에 신뢰할 만한 표준 참고문헌이 없다는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공한 이식 사례들은 모두 세 가지를 공유한다. ① 기존 사회조직(본당, 대학, 마을)을 통로로 삼았고, ② 대출이 아니라 저축부터 시작했으며, ③ 조직화보다 교육을 앞세웠다. 실패 사례에서 결여되었던 바로 그 세 가지다.
2. 현대 마이크로크레딧의 탄생과 확산
2.2.1 그라민은행 — 실험에서 제도로
1974년 방글라데시 대기근 이후,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교수였던 무함마드 유누스는 인근 조브라(Jobra) 마을에서 42명에게 자신의 돈 27달러를 빌려주는 실험을 시작했다. 이 실험은 1979년 중앙은행 시범사업으로 확대되었고, 1983년에는 특별법에 의해 그라민은행이 설립되었다. 차입자가 은행의 지분을 보유하는 독특한 구조였다.
그라민은행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담보 없이 대출하면서도 높은 상환율을 유지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것이 있다. 흔히 인용되는 95~98%라는 상환율은 산정 방식에 대한 회계적 논쟁이 있다. 만기가 도래한 대출을 새 대출로 갈아타게 하면 연체가 통계에 잡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 높은 상환율은 “효과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회수 압력이 강했다”는 지표일 수도 있다.
【사실 확인 1】 그라민은행의 상환율 95~98%
인용되는 주장 — 그라민은행은 담보 없이 대출하면서도 95~98%의 상환율을 유지했다.
검증 — 이 수치는 그라민은행의 자체 보고에서 유래하며, 산정 방식에 관한 학술적 이견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모두크(Morduch, 1999)는 만기 도래 대출을 새 대출로 대체하는 관행이 연체를 통계에서 흡수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회계 기준을 달리 적용하면 실질 연체가 보고치보다 높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루드먼(Roodman, 2012)도 유사한 문제를 제기했다.
해석 시 유의점 — 상환율은 그 자체로 성과 지표가 아니다. 높은 상환율은 ① 차입자의 사업이 성공했거나, ② 회수 압력이 강했거나, ③ 다른 곳에서 빌려 갚았거나, ④ 재대출로 만기를 미뤘음을 모두 뜻할 수 있다. 네 가지를 구분하지 않은 상환율 인용은 정책 근거가 되지 못한다.
2.2.2 그룹대출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라민 모델의 핵심은 그룹대출이다. 이는 자선이 아니라 정보 경제학의 정교한 응용이다. 다섯 개의 장치가 각각 하나의 정보 문제를 겨냥한다.
그림. 그룹대출의 작동 원리
연대책임(joint liability) 은 한 명이 갚지 못하면 그룹 전체가 부담하거나 신규 대출이 막히는 장치다. 물적 담보를 사회적 담보로 대체한다. 동료선별(peer selection) 은 그룹을 스스로 구성하게 함으로써, 대출자가 수행하지 못하는 위험 선별을 차입자에게 위임하는 방식이다. 동료감시(peer monitoring) 는 이웃이 자금 사용을 관찰하게 하여 감시 비용을 사실상 0으로 낮춘다. 순차대출(dynamic incentive) 은 상환 실적에 따라 다음 대출 한도를 늘려 미래의 접근권을 담보로 삼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주간 회합과 소액 상환은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게 한다.
이 다섯 장치를 앞 절의 라이파이젠 원리와 비교해 보면, 그라민의 혁신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해진다. 그라민은 담보를 없앤 것이 아니라 담보를 사회적 관계로 교체했다. 원리는 라이파이젠과 같으며, 달라진 것은 책임의 범위(마을 전체에서 5인 그룹으로)와 상환 주기(연 단위에서 주 단위로)였다.
동시에 그라민은 라이파이젠이 갖고 있던 몇 가지를 버렸다. 조합원 소유, 저축 우선 설계, 무배당 적립, 민주적 통제가 그것이다. 초기 그라민은행은 차입자를 조합원이 아니라 고객으로 대했다. 흥미롭게도 2001년 도입된 그라민 II는 연대책임을 폐지하고 유연상환을 도입했으며 저축 기능을 강화했는데, 이는 사실상 협동조합 금융 원리로의 부분적 회귀였다.
표. 그라민 I과 그라민 II의 비교
항목 | 그라민 I (1976~2001) | 그라민 II (2001~) |
연대책임 | 그룹 전원이 상환에 공동 책임 | 공식적 연대책임 폐지, 개인 책임으로 전환 |
상환 방식 | 고정 주간 상환, 예외 없음 | 유연상환 도입, 위기 시 조정 가능 |
저축 | 의무저축 중심, 인출 제한 | 자발적 저축과 연금형 상품 확대 |
연체 처리 | 그룹 전체의 신규 대출 중단 | 개별 재조정, 집단 처벌 폐지 |
설계 철학 | 집단 압력으로 규율을 만든다 | 장기 거래관계와 저축으로 규율을 만든다 |
【학술 쟁점 3】 그룹대출은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가, 소모하는가
논점 — 연대책임과 동료감시가 공동체에 미치는 순효과는 무엇인가.
입장 A (계약이론) — 베슬리와 코트(Besley & Coate, 1995), 가탁과 기넌(Ghatak & Guinnane, 1999)의 정식화에 따르면, 그룹대출은 대출자가 가질 수 없는 현지 정보를 활용하는 효율적 계약이다. 반복 거래와 상호 감시는 신뢰를 축적시키며, 이는 금융 외의 협력으로도 확산될 수 있다.
입장 B (인류학적 비판) — 라만(Rahman, 1999)과 카림(Karim, 2011)은 방글라데시 현장 연구를 통해 상환 압력이 수치심과 사회적 제재의 형태로 작동하며, 때로는 가정 내 갈등과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고했다. 이 관점에서 그룹대출은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관계를 회수 수단으로 소모한다.
증거의 상태 — 두 입장은 서로 다른 자료를 본다. 계약이론은 상환율과 대출 성과를, 인류학은 회수 과정의 상호작용을 관찰한다. 주목할 점은 그라민은행 자신이 2001년 그라민 II에서 공식적 연대책임을 폐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실무 차원에서 입장 B의 문제 제기를 일부 수용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 연대책임 폐지 이후에도 상환율이 유지되었다면, 애초에 상환을 지탱한 것은 연대책임이 아니라 순차대출(미래 접근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장치의 상대적 기여도를 분리한 실증은 제한적이다.
2.2.3 하나가 아닌 여러 계보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역사를 그라민 하나로 서술하면 절반을 잃는다. 같은 시기에 전혀 다른 설계 철학을 가진 기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BRI Unit Desa는 그룹대출이 아니라 개인대출을 취급했고, 대출보다 저축을 핵심 상품으로 삼아 예금 기반으로 자립을 달성했다. 볼리비아의 BancoSol은 1992년 비정부기구(PRODEM)가 은행으로 전환한 첫 사례로, 도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자본시장 접근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방글라데시의 BRAC은 금융만 제공하지 않고 교육·보건·농업기술·시장 연계를 함께 제공하는 통합 접근을 택했으며, 이는 이후 최빈곤층 대상 “졸업 모델(graduation approach)”로 발전했다.
표. 네 기관의 설계 비교
항목 | 그라민 | BRI Unit Desa | BancoSol | BRAC |
대출 방식 | 그룹·연대책임 | 개인 대출 | 개인·소그룹 혼합 | 그룹 + 통합 서비스 |
담보 | 사회적 담보 | 담보·보증인 요구 | 부분 담보 | 사회적 담보 |
저축 | 의무저축 중심 | 저축이 핵심 상품 | 예금수취 은행 | 저축 + 자산 이전 |
주 고객 | 농촌 여성 | 농촌 소상공인 | 도시 소상공인 | 최빈곤층 포함 |
약점 | 운영비, 이동성 취약 | 최빈곤층 배제 가능 | 상업화 압력 | 복제 비용이 크다 |
2.2.4 국제 캠페인이 된 마이크로크레딧
1990년대 후반 마이크로크레딧은 하나의 금융 기법에서 국제 개발 담론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1997년 워싱턴에서 열린 마이크로크레딧 정상회의는 “2005년까지 1억 가구 도달”이라는 목표를 선언했고, 유엔은 2005년을 국제 마이크로크레딧의 해로 지정했다. 2006년에는 유누스와 그라민은행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그 상이 경제학상이 아니라 평화상이었다는 점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이 경제적 성과가 아니라 사회적 상징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은, 이후 2015년 실증 연구들이 “완만한 효과”를 보고했을 때의 충격을 키웠다. 제도가 상징이 되면 검증보다 확산이 앞서게 되며, 그 대가는 뒤늦게 치러진다.
[1] Guinnane, T. W. (1994), “A Failed Institutional Transplant: Raiffeisen’s Credit Cooperatives in Ireland, 1894–1914,” Explorations in Economic History 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