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념과 규범적 토대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어떻게 하면 금융에 접근시킬 것인가”를 물었다면, 사회연대경제는 “누가 그 조직을 소유하는가”를 묻는다. 그라민 모델이 라이파이젠에게서 버린 요소들 — 조합원 소유, 무배당 적립, 민주적 통제 — 이 바로 사회연대경제의 핵심 주제다.
1.1 이름이 여러 개인 이유
사회연대경제를 공부할 때 처음 부딪히는 어려움은 용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연대경제, 제3섹터, 비영리, 사회적기업이 모두 비슷한 대상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각 개념은 서로 다른 역사적 문제에 대응해 만들어졌다.
표 9. 관련 개념의 비교
개념 | 등장 배경 | 강조점 | 주로 쓰는 지역 |
사회적경제 | 19세기 산업화와 노동자 결사 전통 | 법인격 — 협동조합·공제·결사체·재단 |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EU |
연대경제 | 199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 비판 |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운동성 | 브라질, 에콰도르 |
제3섹터 | 국가–시장 이분법의 한계 인식 | 국가도 시장도 아닌 영역(잔여적 정의) | 영미권 학술 담론 |
비영리 | 미국 세법상 면세 지위 구분 | 이윤 비분배 제약 | 미국, 국제 NGO |
사회적기업 | 복지국가 재편과 사회서비스 수요 | 사회적 목적 + 시장 활동 | 유럽, 영미, 한국 |
실무적으로는 용어보다 “어떤 조직을 포함하는가”라는 목록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같은 “사회적경제”라도 어떤 문서는 협동조합만을, 어떤 문서는 사회적기업과 재단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정의의 차이는 곧 지원 대상과 통계 범위의 차이가 된다.
1.2 최초의 국제 합의 정의
2022년 6월 10일, 제110차 국제노동총회(ILC)가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결의를 채택했다. 정부·사용자·노동자 3자가 합의한 최초의 국제적 정의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사회연대경제는 다음 네 가지 원칙에 따라 활동하는 단위·조직·기업을 포괄한다. ① 자발적 협력과 상호부조, ② 민주적·참여적 지배구조, ③ 자율성과 독립성, ④ 이윤과 잉여보다 사회적·환경적 목적을 우선하는 것이다. 포괄되는 조직에는 협동조합, 결사체(association), 상호공제조합, 재단, 사회적기업, 자조집단 등이 포함된다.
같은 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사회연대경제와 사회혁신에 관한 권고를 채택했으며, 이듬해인 2023년 4월 18일에는 유엔 총회가 결의 A/RES/77/281을 통해 사회연대경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기여를 인정하고 회원국에 법·재정·조달 지원을 촉구했다.
1.3 200년의 계보
사회연대경제는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19세기 초 산업화에 대한 대응에서 시작된 긴 계보를 갖는다. 오웬과 푸리에, 프루동 등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협동적 생산 구상이 그 출발점이며, 1844년 영국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이 정리한 운영 원칙이 실천적 원형이 되었다. 18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창설되면서 국경을 넘는 운동으로 발전했고, 1995년 맨체스터에서 채택된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의 7원칙이 오늘날 각국 협동조합법의 사실상 표준이 되었다.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두 사람은 칼 폴라니와 엘리너 오스트롬이다.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1944)에서 경제가 시장교환만이 아니라 호혜·재분배·교환이라는 세 원리로 조직된다고 보았다. 시장이 사회에 착근(embedded)되어 있으며, 착근이 풀리면 사회가 반작용한다는 그의 “이중운동” 개념은 사회연대경제를 예외적 영역이 아니라 호혜 원리의 제도화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오스트롬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1990)에서 공유자원이 국유화나 사유화 없이도 이용자들의 자치로 관리될 수 있음을 실증했다. 그가 정리한 여덟 가지 원칙은 협동조합 지배구조의 설계 원리를 제공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원칙들이 제1부에서 본 라이파이젠의 설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점이다.
표 10. 오스트롬의 원칙과 협동조합 금융의 대응
오스트롬 원칙 | 내용 | 라이파이젠·협동조합의 대응 |
① 명확한 경계 | 누가 이용자이고 어디까지가 자원인가 | 공동유대(common bond), 지역 한정 |
② 현지 조건 적합성 | 규칙이 지역 여건에 맞아야 한다 | 조합별 정관 자율성 |
③ 집합적 선택 | 규칙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규칙을 만든다 | 1인 1표, 총회 |
④ 감시 | 이용자 또는 그가 뽑은 자가 감시한다 | 동료감시, 감사 선출 |
⑤ 점진적 제재 | 위반의 경중에 따라 제재를 단계화 | 순차대출, 단계적 신용 제한 |
⑥~⑧ 분쟁해결·자치권·중층 구조 | 저렴한 분쟁해결, 조직권 인정, 연합 조직 | 고충처리, 협동조합법, 연합회 |
즉 협동조합 금융은 “금융이라는 공유자원의 자치관리”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계보가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권의 와크프(waqf)와 자카트, 동아시아의 계(契)와 두레, 일본의 무진(無盡), 아프리카의 우분투와 스토크벨, 안데스의 밍가(minga)와 아이유(ayllu) 등 각 문명권에 상응하는 전통이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