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설계도 나라가 다르면 다르게 작동한다. 도입 여부보다 도입 시점을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결정일 때가 많다.
이 장을 마치면
1. 여덟 개 실행조건 지표로 대상국을 진단할 수 있다.
2. 진단 결과에 따라 수단과 도입 순서를 바꿀 수 있다.
3. 도입 시기에 관한 권고를 근거와 함께 제시할 수 있다.
들어가며 — 법에 있는 것과 실제로 되는 것
개발협력 실무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자료의 부재가 아니라 자료의 형식성이다. 법에는 동산담보등기 제도가 있다고 나와 있는데 실제 등기 건수는 연 200건이다. 감독규정에 보증 조항이 있는데 실무에서 적용된 사례가 없다. 신용정보원이 설립되어 있는데 조회 가능한 기업이 4,000개뿐이다.
진단이란 이 격차 — 법에 있는 것(de jure)과 실제로 되는 것(de facto)의 격차 — 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격차는 문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물어야 알 수 있다.
이 장은 여덟 개 지표로 그 격차를 구조화하고, 진단 결과를 사업 설계로 옮기는 방법을 다룬다.
13.1 여덟 개 진단 지표
[도식 13-1] 국가 실행조건 여덟 지표
[표 13-1] 지표별 진단 방법
지표 | 문턱값 | 공식 자료원 |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것 (실제로 되는가) |
① 민간신용 / GDP | 30% 이상 | 세계은행 GFDD | 중소기업 대출이 총여신에서 차지하는 비중 · 대출 만기 구조 |
② 담보 요구 배율 | 1.5배 이하 | 세계은행 기업조사 | 실제 창구에서 요구하는 담보 종류 · 부동산 외 담보 수용 사례 |
③ 동산담보등기 | 존재 및 가동 | 법령 · 등기소 | 연간 등기 건수 · 실행(집행) 사례 수 · 평균 집행 소요기간 |
④ 신용정보 커버리지 | 성인의 20% 이상 | 신용정보원 · 중앙은행 | 등재 기업 수 · 조회 건수 · 부정적 정보만 있는지 긍정적 정보도 있는지 |
⑤ 위축차주 비중 | 27% 내외가 평균 | 세계은행 기업조사 | 위축 사유의 분포 · 제도 인지도 조사 결과 |
⑥ 은행권 NPL | 15% 미만 | 중앙은행 · IMF FSI | NPL 정의 · 재구조화 여신의 처리 · 최근 3년 추세 |
⑦ 은행 집중도 | 상위 3사 70% 미만 | 중앙은행 | 중소기업 대출 시장의 집중도 (총자산 집중도와 다를 수 있다) |
⑧ 감독규정상 보증 취급 | 적격 보증제공자 열거 | 은행감독규정 | 조문 번호 · 적용 위험가중치 · 실제 적용 사례 유무 |
마지막 열이 이 표의 핵심이다. 공식 자료로는 「제도가 있다」까지만 알 수 있다. 그것이 작동하는지는 등기 건수, 조회 건수, 집행 사례 수 같은 실행 지표로 확인해야 한다.
격차를 확인하는 세 가지 질문
동산담보등기 — 「지난해 등기 건수가 몇 건이고, 그중 실제로 집행된 사례가 몇 건입니까?」 등기는 되는데 집행이 안 되면 은행은 그 담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용정보 — 「지난달 조회 건수가 몇 건입니까?」 등재는 되어 있는데 조회가 없으면 은행이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독규정 — 「이 조항이 적용된 실제 사례가 있습니까? 어느 은행이 언제 적용했습니까?」 조문이 있어도 적용 선례가 없으면 은행 회계 담당자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13.2 금융심화 30% 문턱
여덟 지표 중 첫 번째가 가장 결정적이다. 세계은행이 2026년 74개국 108개 보증기관을 조사한 결과, 시장 도달 범위는 주로 국가의 기초 여건 — 특히 금융 심화 — 에 의해 결정되며, 제도 설계 자체보다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신용/GDP 비율이 30% 미만인 국가는 제도의 질과 무관하게 확장에 구조적 제약을 받는다. 보증제도의 출범이나 확대가 더 깊은 금융발전 의제를 대체할 수 없다는 함의를 갖는다.」 — World Bank (2026)
이 발견이 실무에 갖는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 규모 목표를 그 나라의 금융 심화 수준에 맞춰 잡아야 한다. 민간신용/GDP가 22%인 나라에서 「5년 내 3만 개 기업 지원」 같은 목표는 처음부터 달성 불가능하다. 그리고 미달성은 사업 실패로 기록된다.
둘째, 보증사업을 하더라도 금융 심화 과제를 병행해야 한다. 지점망 확대, 모바일 금융, 마이크로파이낸스 육성, 예금 동원 같은 과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보증만으로는 얕은 시장을 깊게 만들 수 없다.
13.3 판정 매트릭스
[도식 13-2] 금융심화 × 제도 품질 사분면과 처방
여덟 지표를 두 축으로 요약하면 네 칸이 나온다. 가로축은 제도 품질(③⑧을 중심으로), 세로축은 금융 심화(①⑥⑦을 중심으로)다.
[표 13-2] 네 칸별 권고
칸 | 상태 | 권고 | 사업 형태 |
금융심화 높음 / 제도 좋음 | 보증이 가장 잘 작동하는 조건 | 본격 설계로 진행 · 규모 목표 상향 가능 | 표준 보증사업 |
금융심화 높음 / 제도 나쁨 | 시장은 있으나 제도가 없다 | 지배구조 · 감독규정 정비를 선행 조건으로 건다 | 제도 정비 + 보증 2단계 |
금융심화 낮음 / 제도 좋음 | 제도는 되어 있으나 시장이 얕다 | 보증 규모 목표를 낮추고 금융심화 과제를 병행 | 소규모 보증 + 금융접근성 확대 |
금융심화 낮음 / 제도 나쁨 | 둘 다 갖춰지지 않았다 | 보증 도입 유보 · 준비사업으로 재구성 | 준비사업 + 2년차 판단 게이트 |
네 칸 중 바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나머지 셋에는 조건, 병행 과제, 또는 유보가 붙는다. 이 사실을 제안서 앞부분에 명시하면 설계의 이유가 한 장으로 설명된다.
13.4 진단에서 사업으로
진단 결과를 사업 설계로 옮기는 것이 이 장의 마지막 과제다. 세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① 규모 목표
금융 심화 수준에 맞춰 잡는다. 실무적 기준으로는 「그 나라 중소기업 대출 잔액의 3~8%」 정도를 5년 목표로 삼는 방식이 쓰인다. 이보다 높은 목표는 시장 흡수 능력을 넘어선다.
② 선행 과제와 병행 과제의 구분
선행 과제는 충족되지 않으면 보증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감독규정에 보증기관을 열거하는 것, 보증기관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병행 과제는 없어도 보증은 작동하지만 함께 하면 효과가 커지는 것이다. 동산담보등기 정비, 신용정보 확충이 여기에 속한다.
선행 과제는 사업 착수의 조건(condition precedent)으로 걸고, 병행 과제는 사업 구성요소로 넣는다.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하는 사업」이 되어 어느 것도 완성되지 않는다.
③ 판단 게이트
금융심화가 낮거나 제도가 미비한 경우, 사업을 1단계와 2단계로 나누고 그 사이에 판단 게이트를 둔다. 1단계에서 선행 과제를 수행하고, 게이트에서 정해진 조건의 충족 여부를 확인한 뒤 2단계 본사업으로 넘어간다.
[표 13-3] 판단 게이트 설계 예시
시점 | 확인 조건 | 미충족 시 조치 | ||
1단계 종료 (24개월) | ① 보증기관 법인 설립 완료 및 이사회 구성 ② 감독규정에 적격 보증제공자로 명시 ③ 참여 은행 3곳 이상과 기본협약 체결 ④ 시범 보증 200건 이상 발급 및 대위변제 절차 1회 이상 완주 | 2단계 재원 집행 보류 · 6개월 유예 후 재심 · 미충족 시 사업 종료 및 잔여 재원 반환 | ||
2단계 중간 (48개월) | ① 보증잔액 목표의 60% 이상 ② 평균 대위변제 지급 소요 60일 이내 ③ 부도율 설계값의 1.5배 이내 ④ 평가용 기초 자료 수집 체계 가동 | 규모 목표 하향 조정 · 상품 설계 재검토 · 기술협력 강화 | ||
게이트가 있어야 「하지 말자」를 말할 수 있다
제3장에서 유보 권고의 어려움을 다뤘다. 담당자 개인이 「이 사업은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판단 게이트는 이 부담을 개인에게서 절차로 옮긴다. 조건이 사전에 문서로 합의되어 있으면, 미충족 시 보류는 담당자의 판단이 아니라 약속의 이행이 된다.
수원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건을 충족하면 2단계로 간다」는 명확한 경로가 있으므로, 보류가 거절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게이트 조건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로 써야 한다. 「제도 정비가 충분히 진행될 것」이 아니라 「감독규정 제○조에 보증기관이 명시될 것」으로 쓴다. | ||||
핵심 정리
1.
진단이란 법에 있는 것과 실제로 되는 것의 격차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공식 자료로는 「제도가 있다」까지만 알 수 있고, 등기 건수조회 건수·집행 사례 수 같은 실행 지표로 작동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2.
여덟 개 지표는 금융심화, 담보 배율, 동산담보등기, 신용정보 커버리지, 위축차주 비중, 은행권 NPL, 은행 집중도, 감독규정상 보증 취급이다.
3.
첫 번째 지표가 가장 결정적이다. 민간신용/GDP가 30% 미만이면 제도 품질과 무관하게 보증 확장이 구조적으로 제약된다.
4.
이 발견의 실무적 함의는 둘이다. 규모 목표를 금융 심화 수준에 맞추는 것, 그리고 금융심화 과제를 병행 과제로 넣는 것이다.
5.
금융심화 × 제도 품질 사분면에서 바로 진행할 수 있는 칸은 하나뿐이다. 나머지 셋에는 조건, 병행 과제, 또는 유보가 붙는다.
6.
선행 과제(충족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것)는 착수 조건으로 걸고, 병행 과제(있으면 효과가 커지는 것)는 사업 구성요소로 넣는다.
7.
판단 게이트는 유보의 부담을 개인에게서 절차로 옮긴다. 게이트 조건은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로 써야 한다.
생각해볼 문제
1.
어떤 나라의 동산담보등기법이 3년 전 제정되었는데 연간 등기 건수가 180건이다. 이 제도는 작동하고 있는가.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는가.
2.
민간신용/GDP가 26%인 나라에서 보증사업을 요청받았다. 규모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겠는가. 근거는 무엇인가.
3.
감독규정에 「정부 및 공공기관의 보증」이라는 표현만 있고 보증기금은 열거되어 있지 않다. 이것을 선행 과제로 걸겠는가, 병행 과제로 넣겠는가.
4.
판단 게이트를 두려는데 수원국이 「불신의 표현」이라며 반발한다.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5.
여덟 지표 중 세 개의 자료를 구할 수 없다. 이 상태에서 진단을 진행할 수 있는가. 자료 부재 자체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6.
은행 집중도가 상위 3사 88%다. 이것이 보증사업 설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제8장의 협상력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논의 주제
아래 주제는 3~5인 조별 토론용이다. 각 조는 결론과 함께 「반대 입장에서 나올 가장 강한 반론」을 하나씩 정리해 발표한다.
주제 1. 30% 문턱을 심사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민간신용/GDP 30% 미만 국가에서 보증 확장이 제약된다는 결과가 있다. 이를 공여기관 심사 기준으로 삼으면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삼지 않으면 실패가 반복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기준이 아니라 설계 조정 요인」으로 쓰는 절충은 실제로 작동하는가.
주제 2. 진단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
여덟 지표를 제대로 진단하려면 현장 조사와 면담이 필요하다.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런데 공여기관은 「빨리 사업을 시작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진단에 사업비의 몇 퍼센트를 쓰는 것이 적절한가. 진단 없이 시작해 1년차에 조정하는 방식은 어떤가.
주제 3. 판단 게이트가 실제로 작동하는가
게이트 조건이 미충족되었을 때 실제로 보류한 사례가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은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해석으로 넘어간다. 게이트를 실효적으로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제3자 검증? 자동 종료 조항? 잔여 재원의 다른 용도 전환?
주제 4. 진단 결과를 누가 공개할 것인가
진단 결과가 부정적이면 수원국은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개하지 않으면 다른 공여기관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진단 보고서를 공개할 것인가. 공개한다면 어느 수준까지인가. 수원국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지식을 공유할 방법이 있는가.
PBL 문제해결 과제
과제 — M국 종합 진단과 사업 형태 결정
상황: M국 정부가 중소기업 금융 개선 협력을 요청했다. 여러분은 사전 진단팀이다.
M국 자료: 민간신용/GDP 41%. 은행 NPL 9.2%. 담보 요구율 79%, 담보/대출 배율 1.8배. 동산담보등기법은 2년 전 제정되었으나 등기소 전산이 미구축이며 연간 등기 340건, 집행 사례 0건. 신용정보원 설립 5년차, 등재 기업 2만 8천 개(전체 공식기업의 약 19%), 월 조회 건수 1,200건. 위축차주 비중 36%. 상위 3개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의 64% 점유. 은행감독규정 제47조에 「정부가 전액 보증하는 채권」에 대한 위험가중치 0% 조항이 있으나 부분보증에 대한 규정은 없고 적용 사례도 없다. 기존 보증기금은 재무부 산하 특별계정으로 운영되며 자본 1,200만 달러, 보증잔액 2,900만 달러(2.4배), 별도 재무제표 없음.
요구 산출물: (1) 여덟 지표 진단표 완성 — 각 지표별로 공식 자료값과 「실제로 되는가」 확인 항목을 함께 기입, (2) 도식 13-2 사분면에서 M국의 위치와 근거, (3) 선행 과제와 병행 과제의 구분(각 3개 이상), (4) 사업 형태 권고 — 표준 보증사업 / 2단계 사업 / 준비사업 중 선택과 근거, (5) 판단 게이트 조건 4개(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로), (6) 5년 규모 목표와 산출 근거, (7) M국 재무부가 「기존 특별계정을 그대로 활용하자」고 할 때의 답변.
분량과 형식: A4 5쪽 이내. 조별 작성 후 30분 발표 및 조 간 교차 질의. 평가는 진단의 정확성과 권고의 일관성으로 한다.
실습
부록 C의 국가 실행조건 진단표를 사용해 자국 또는 담당 대상국을 진단한다. 여덟 지표 각각에 대해 (1) 공식 자료값과 출처, (2) 「실제로 되는가」를 확인할 질문과 그 답(확인 불가 시 그렇게 표기), (3) 문턱값 대비 판정을 기입한다. 이어 사분면에서의 위치를 표시하고, 도입 권고 또는 유보 권고를 한 쪽으로 작성한다. 이 문서가 제14장 사업설계서의 ①·② 칸이 된다.
핵심 개념 | 금융심화 private credit/GDP · 담보등기 · 신용정보 커버리지 · 도산·집행 제도 · 은행 집중도 · 감독역량 · 법에 있는 것과 실제로 되는 것의 격차 |
더 읽을거리
•
Calice, P. (2026), Global Anatomy of Credit Guarantee Schemes, World Bank, 제1절 및 제4.1절. — 시장 도달과 국가 기초 여건의 관계.
•
World Bank, Global Financial Development Database (GFDD). — 민간신용/GDP 등 금융심화 지표.
•
World Bank Enterprise Surveys (enterprisesurveys.org). — 담보 요구율, 위축차주 비중의 국가별 자료.
•
World Bank, Secured Transactions and Collateral Registries Toolkit. — 동산담보등기 진단 방법론.
•
IMF, Financial Sector Assessment Program (FSAP) 국가보고서. — 감독체계와 은행권 건전성의 종합 진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