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기금 설립은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그래서 진단 결과와 무관하게 선택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 장을 마치면
1. 보증을 포함한 일곱 개 수단을 비교해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2. 보증을 도입하면 안 되는 세 가지 상황을 판별할 수 있다.
3. 수단 선택의 근거를 예산 당국이 이해할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들어가며 — 왜 항상 보증이 선택되는가
중소기업 금융을 개선하는 수단은 여럿이다. 그런데 개발협력 현장에서 제안되는 것은 대개 보증이다. 이유는 기술적이지 않다.
보증기금은 눈에 보이는 기관이 생긴다. 개소식을 할 수 있고, 이사장을 임명할 수 있으며, 언론에 나온다. 무엇보다 당장 재정이 나가지 않는다. 출연금만 넣으면 그 배수만큼 대출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담보등기 제도 정비는 법 개정에 3년, 전산 구축에 2년이 걸린다. 개소식도 없고 언론에도 안 나온다. 신용정보원 설립은 은행들의 자료 제공 합의를 받는 데만 몇 년이 든다.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이 비대칭 때문에 진단 결과가 무엇이든 결론은 보증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몇 년 뒤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 이 장은 그 반복을 끊기 위한 판단 도구를 다룬다.
3.1 일곱 개 수단의 지도
중소기업 금융제약에 쓰이는 수단을 두 축 위에 놓아 보면 각각의 위치가 분명해진다. 가로축은 겨냥하는 문제(담보 문제인가 정보 문제인가), 세로축은 제도 구축에 걸리는 시간이다.
[도식 3-1] 일곱 개 수단의 지도
보증은 왼쪽 아래에 있다. 담보 문제를 겨냥하고 비교적 빨리 세울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위에 동산담보등기와 담보법 개혁이 있다. 이 셋은 같은 문제를 겨냥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가 이 장의 핵심 질문이 된다.
[표 3-1] 일곱 개 수단의 비교
수단 | 해결하는 문제 | 구축 기간 | 재정 성격 | 대표적 실패 양상 |
신용보증 | 담보 부족 · 정보 비대칭 | 1~2년 | 우발채무 (나중에 나감) | 수요 없이 공급만 만들어 실적 미달 · 은행의 위험 이전 |
동산담보등기 | 담보 부족 | 3~5년 | 초기 구축비 (한 번) | 등기는 만들었으나 집행 절차가 안 따라와 은행이 안 쓴다 |
담보법 개혁 | 담보 부족 · 집행 | 5~10년 | 입법 · 사법 역량 | 법은 바뀌었으나 법원 실무가 그대로 |
신용정보원 | 정보 비대칭 | 3~5년 | 초기 구축비 + 운영비 | 은행이 자료를 안 낸다 · 개인정보 제도와 충돌 |
회계 표준화 | 정보 비대칭 | 5년 이상 | 교육 · 감리 역량 | 중소기업이 두 벌 장부를 계속 쓴다 |
이자보전 | 가격 부담 | 수개월 | 즉시 현금 지출 | 재원 소진과 함께 대출도 종료 · 지대 추구 |
직접 전대 | 자금 공급 자체 | 1년 내외 | 즉시 현금 지출 | 은행 심사역량이 자라지 않는다 · 민간 구축(crowding out) |
3.2 네 개의 질문 — 수단 선택 흐름도
현장에서 쓸 수 있는 판단 절차는 네 개의 질문으로 정리된다. 각 질문에 「아니오」가 나오면 보증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도식 3-2] 수단 선택 흐름도
Q1. 민간신용 / GDP가 30% 이상인가
가장 먼저 볼 지표다. 세계은행이 2026년 74개국 108개 보증기관을 조사한 결과, 이 비율이 30% 미만인 국가에서는 제도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보증 확장이 구조적으로 제약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은행 시스템 자체가 얕기 때문에 보증을 붙일 대상 대출이 없는 것이다.
「보증기금 신설이 금융심화 의제를 대신할 수 없다.」 — World Bank(2026), 정책 논의 제4.1절
이 경우 보증사업을 완전히 배제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규모 목표를 현실적으로 낮추고, 금융 접근성 확대(지점망·모바일 금융·마이크로파이낸스)를 병행 과제로 넣어야 한다. 「5년 내 3만 개 기업 지원」 같은 목표는 이런 나라에서 처음부터 달성 불가능하다.
Q2. 담보 요구 배율이 1.5배를 넘는가
제1장에서 본 세계 중위값은 담보 요구율 77%, 담보/대출 배율 1.67배다. 대상국 수치가 이보다 낮다면 담보는 병목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출이 안 나간다면 다른 원인 — 수익성 없는 사업, 거시 불안정, 은행의 위험 회피 — 을 찾아야 한다.
Q3. 동산담보등기 제도가 있는가
이 질문이 이 장에서 가장 논쟁적이다. 제도가 없다면 재고와 매출채권은 담보가 되지 못하고, 중소기업이 쓸 수 있는 담보는 부동산뿐이다. 이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보증으로 우회하는 길이다. 담보가 없는 기업에 보증을 붙여 대출을 내보낸다. 빠르다. 그러나 그 나라 금융시장의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보증 없이는 여전히 대출이 안 나간다.
다른 하나는 등기제도를 먼저 만드는 길이다. 오래 걸린다. 그러나 한 번 만들면 재고와 매출채권이 영구적으로 담보가 되고, 보증에 대한 의존이 줄어든다.
실무적 답은 대개 병행이다. 보증사업을 하되, 동산담보등기 정비를 기술협력 과업으로 함께 넣는다. 그리고 보증 상품 설계에서 「동산담보 병용 시 보증료 할인」 같은 장치로 두 제도를 연결한다. 이 연결을 설계하지 않으면 보증이 등기제도의 필요성을 가려 버린다.
Q4. 은행이 보증기관의 지급을 신뢰할 근거가 있는가
신설 보증기관에는 실적이 없다. 지급 이력도 없다. 은행 입장에서 이 보증서가 실제로 현금이 될지 알 수 없다. 제2장에서 본 첫째 경로가 처음부터 막혀 있는 상태다.
이 문제를 푸는 장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재보증이다. 국제기구나 공여국이 보증기관의 손실 일부를 다시 보증해 준다. 다른 하나는 신용보강(credit enhancement)이다. 공여국 자금을 1차손실 흡수 계정으로 예치해 둔다. 둘 다 제5장과 제14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3.3 재정비용 — 같은 예산으로 무엇을 살 것인가
예산 당국을 설득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같은 금액으로 각 수단이 만들어 내는 대출량을 비교하는 것이다.
[도식 3-3] 예산 100억 원의 세 가지 사용법
[표 3-2] 예산 100억 원의 5년 후 상태 비교 (예시 계산)
항목 | 이자보전 | 신용보증 | 직접 전대 |
만들어지는 대출 | 1,000억 원 | 1,000억 원 | 100억 원 |
5년간 재정 지출 | 100억 원 (전액 소진) | 28억 원 (순손실) | 0억 원 (원금 회수 시) |
5년 후 잔여 재원 | 0억 원 | 72억 원 | 100억 원 |
남는 우발채무 | 없음 | 있음 (잔액의 70%) | 없음 |
은행 심사역량 축적 | 없음 | 있음 | 거의 없음 |
중단 시 결과 | 대출도 즉시 중단 | 기존 보증은 만기까지 유효 | 회수 후 종료 |
주: 부도율 4%, 회수율 30%, 보증비율 70%, 레버리지 10배, 이자보전 2%p 5년을 가정한 예시 계산이다. 실제 수치는 대상국 자료로 대체한다.
표의 세 번째 줄이 핵심이다. 이자보전은 5년 뒤 재원이 0이 되고 대출도 멈춘다. 보증은 손실을 흡수하고도 72억 원이 남아 계속 회전한다. 이것이 보증이 반복해서 선택되는 합리적인 이유다.
그러나 네 번째 줄을 함께 봐야 한다. 보증은 우발채무를 남긴다. 지금 안 나가는 돈이 나중에 나간다. 경기 하강기에는 이 우발채무가 한꺼번에 현실화된다. 영국의 코로나 대응 보증에서 정부 손실이 70억~120억 파운드로 추정되는 것이 그 사례다. 이 문제는 제12장에서 정면으로 다룬다.
3.4 보증을 쓰면 안 되는 세 가지 상황
마지막으로, 진단 결과와 무관하게 보증 도입을 유보해야 하는 상황이 세 가지 있다.
[표 3-3] 보증 도입 유보가 필요한 세 상황
상황 | 왜 위험한가 | 먼저 해야 할 일 | ||
① 은행권 부실이 심각하다 (NPL 15% 이상) | 은행은 위험 자체를 회피하는 상태다. 보증을 붙여도 대출이 늘지 않거나, 늘어난 대출이 기존 부실을 이연하는 데 쓰인다. | 은행 건전성 회복 · 부실채권 정리 · 감독 강화 | ||
② 정치적 대출 압력이 강하다 | 보증기관이 정치적 배분 통로가 된다. 부도율이 급등하고 몇 년 내 자본이 잠식된다. 세계은행 조사에서 감독 부재 기관의 8%가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 독립 법인격 · 독립 이사회 · 외부 감독 (제4장) | ||
③ 거시 불안정이 크다 (고인플레이션 · 환율 급변) | 장기 보증의 가격을 매길 수 없다. 보증료를 아무리 받아도 실질가치가 유지되지 않는다. | 거시 안정화 · 단기 상품으로 한정 · 자국통화 기준 설계 | ||
「하지 말자」를 제안하는 법
개발협력 실무자가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이 사업은 지금 하면 안 됩니다」이다. 수원국이 요청했고, 예산이 배정되어 있으며, 상급자는 성과를 기대한다.
이때 유효한 방식은 반대가 아니라 재구성이다. 「보증기금 설립」을 「보증 도입 준비사업」으로 바꾸고, 1단계에서 담보등기 정비와 감독규정 개정을 하고, 2년차 판단 게이트를 두어 조건 충족 시 본사업으로 넘어가게 설계한다.
이 방식은 수원국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면서 실패 확률을 낮춘다. 그리고 2년 뒤 조건이 충족되면 그때는 근거를 갖춘 사업이 된다. 제14장의 사업설계서 여덟 칸 중 「위험과 가정」 칸이 이 논리를 담는 자리다. | ||||
핵심 정리
1.
보증기금이 반복해서 선택되는 이유는 기술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고, 빠르고, 당장 재정이 안 나가기 때문이다. 이 비대칭이 진단을 건너뛰게 만든다.
2.
수단 선택은 네 개의 질문으로 정리된다. 금융심화(민간신용/GDP 30%), 담보 배율(1.5배), 동산담보등기 유무, 보증기관 신뢰 근거다.
3.
민간신용/GDP가 30% 미만인 나라에서는 제도 품질과 무관하게 보증 확장이 제약된다. 이 경우 규모 목표를 낮추고 금융심화 과제를 병행해야 한다.
4.
같은 예산에서 이자보전과 보증은 비슷한 대출량을 만든다. 차이는 5년 뒤다. 이자보전은 재원이 소진되면 대출도 멈추고, 보증은 손실을 흡수하고도 회전한다. 대신 보증은 우발채무를 남긴다.
5.
은행권 부실이 심각하거나, 정치적 대출 압력이 강하거나, 거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보증 도입을 유보해야 한다. 유보를 제안할 때는 반대가 아니라 「준비사업 + 판단 게이트」로 재구성하는 편이 실효적이다.
생각해볼 문제
1.
표 3-2에서 보증의 5년 후 잔여 재원이 72억 원으로 계산되었다. 이 숫자가 성립하려면 어떤 가정이 유지되어야 하는가. 그 가정이 깨지는 상황을 두 가지 들어 보라.
2.
동산담보등기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보증사업을 먼저 하면, 등기제도의 필요성이 가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 지적은 타당한가. 타당하다면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가.
3.
어떤 나라의 민간신용/GDP가 24%다. 그런데 재무부는 보증기금 설립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공여기관 담당자로서 어떤 설계로 응답하겠는가.
4.
「이자보전은 재원이 소진되면 끝난다」는 것이 보증의 장점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명확한 종료 시점이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 어느 쪽 논리가 더 설득력 있는가.
5.
직접 전대는 은행 심사역량을 키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직접 전대가 더 나은 상황은 어떤 경우인가.
6.
표 3-3의 세 가지 유보 상황 가운데 두 가지에 해당하는 나라가 있다. 그런데 이미 공여국 예산이 배정되었고 집행 시한이 있다. 실무자로서 어떤 선택지가 있는가.
논의 주제
아래 주제는 3~5인 조별 토론용이다. 각 조는 결론과 함께 「반대 입장에서 나올 가장 강한 반론」을 하나씩 정리해 발표한다.
주제 1. 진단 없는 도입은 왜 반복되는가
보증기금 설립은 개소식을 할 수 있고 당장 재정이 나가지 않는다. 담보등기 정비는 5년이 걸리고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이 비대칭 때문에 진단 결과와 무관하게 보증이 선택되는 일이 반복된다. 공여국 실무자로서 이 압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수원국의 정치적 선택을 존중하는 것과 효과 없는 사업을 막는 것 사이에서 어디에 선을 그을 것인가.
주제 2. 30% 문턱은 규칙인가 참고치인가
세계은행 연구는 민간신용/GDP 30% 미만 국가에서 보증 확장이 제약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수치를 공여기관의 심사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기준으로 삼으면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삼지 않으면 실패가 반복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 3. 우발채무를 누가 책임지는가
보증사업의 매력은 지금 재정이 안 나간다는 점이다. 그런데 손실은 5~10년 뒤에 나타나고, 그때는 사업 담당자도 정권도 바뀌어 있다. 이 시차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공여국이 우발채무의 일부를 명시적으로 떠안는 설계는 가능한가.
주제 4. 「하지 말자」를 말할 수 있는 조직인가
유보 권고는 담당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상급자, 수원국, 예산 일정이 모두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판단이 가능하려면 조직에 어떤 장치가 있어야 하는가. 사전 진단 의무화, 외부 검토, 단계별 게이트 중 무엇이 실효적인가.
PBL 문제해결 과제
과제 — C국 — 세 개의 대안 중 선택하기
상황: C국 정부가 중소기업 금융 개선을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 가용 예산은 3,000만 달러, 사업 기간은 5년이다. 세 가지 대안이 제시되었다.
대안 A: 신용보증기금 설립 (출연 2,500만 달러 + 운영 기술지원 500만 달러). 대안 B: 동산담보등기 시스템 구축 및 담보법 개정 지원 (1,200만 달러) + 소규모 보증 시범사업 (1,800만 달러). 대안 C: 기존 국책은행을 통한 중소기업 전대자금 (2,800만 달러) + 심사역량 강화 (200만 달러).
C국 지표: 민간신용/GDP 34%, 은행 NPL 7%, 담보 요구율 81%, 담보/대출 배율 1.9배, 동산담보등기 없음, 신용정보 등재율 성인의 11%, 위축차주 33%, 은행 4곳이 자산의 79% 점유, 최근 3년 물가상승률 5~7%, 감독규정에 보증 관련 조항 없음.
요구 산출물: (1) 도식 3-2의 네 질문에 C국 자료로 답한 흐름도, (2) 세 대안 각각에 대한 5년 후 예상 상태 (표 3-2 형식), (3) 권고안과 그 근거, (4) 권고안 채택 시 반드시 함께 설계해야 할 병행 과제 2개, (5) 탈락시킨 대안의 지지자를 설득할 한 문단.
분량과 형식: A4 4쪽 이내. 조별 작성 후 조 간 교차 반론 20분. 평가는 결론의 방향이 아니라 자료 활용의 일관성으로 한다.
실습
자국 또는 담당 대상국에 대해 도식 3-2의 네 질문에 답한다. 각 질문마다 근거 자료와 출처를 명시하고, 「아니오」가 나온 항목에 대해서는 병행 과제 또는 선행 과제를 한 줄씩 적는다. 완성된 흐름도는 제13장 국가 진단표의 요약면으로 그대로 사용한다.
핵심 개념 | 동산·채권담보 movable collateral · 담보등기 collateral registry · 신용정보 credit information · 팩토링 factoring · 리스 leasing · 이자보전 interest subsidy · 전대(轉貸) on-lending |
더 읽을거리
•
Calice, P. (2026), Global Anatomy of Credit Guarantee Schemes, World Bank, 제1절 및 제4.1절. — 금융심화와 보증 규모의 관계.
•
Love, I., M. S. Martínez Pería and S. Singh (2016), “Collateral Registries for Movable Assets: Does Their Introduction Spur Firms’ Access to Bank Finance?,” Journal of Financial Services Research 49. — 동산담보등기의 효과.
•
IFAD, Loan Guarantee Funds: Lessons Learned. — 농촌소규모 보증기금의 실패 사례 정리.
•
FAO, Credit Guarantee Systems for Agriculture and Rural Enterprise Development. — 농업 부문에서의 수단 선택 논의.
•
OECD (2018), SME and Entrepreneurship Financing: The Role of Credit Guarantee Schemes and Mutual Guarantee Societies. — 수단 간 비교의 정책적 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