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은 위험을 옮기기만 하는 장치가 아니다. 정보를 만들고, 은행의 자본을 아껴 준다.
이 장을 마치면
1. 위험이전 · 정보생산 · 자본절감 세 경로를 구분해 설명할 수 있다.
2. 자국 은행감독규정에서 보증이 위험가중치에 반영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3. 세 경로 각각이 자국에서 막혀 있는지를 진단 질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들어가며 — 왜 좋은 제도가 팔리지 않는가
보증제도를 만들어 놓고 실적이 나오지 않는 나라가 많다. 상품 설계는 국제 기준에 맞고, 보증비율도 적정하며, 재원도 확보되어 있다. 그런데 은행 창구에서 보증서가 나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자가 가장 자주 하는 처방은 보증비율을 올리는 것이다. 70%를 80%로, 80%를 90%로 올린다.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위험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보증은 은행에게 세 가지를 준다. 위험 이전, 정보 생산, 자본 절감이다. 이 세 경로 중 어디가 막혀 있는지를 알아야 올바른 처방이 나온다. 이 장은 그 세 경로를 하나씩 뜯어본다.
2.1 세 개의 경로
[도식 2-1] 보증이 작동하는 세 개의 경로
세 경로는 성격이 다르다. 첫째 경로는 계약만 있으면 작동한다. 둘째와 셋째 경로는 그 나라의 제도가 받쳐 줘야 작동한다. 그래서 개도국에서는 첫째 경로만 작동하고 나머지 둘은 잠자는 경우가 흔하다.
경로 ① 위험 이전 — 은행의 기대손실을 낮춘다
가장 직접적인 경로다. 부도가 나면 보증기관이 보증비율만큼 대신 갚는다. 은행 입장에서 같은 대출의 기대손실이 줄어든다.
제1장에서 본 신용할당 그림으로 돌아가면, 이것은 은행의 기대수익 곡선을 위로 밀어 올리는 효과다. 곡선이 올라가면 은행이 대출을 멈추는 지점(r*)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같은 금리에서 더 많은 대출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보증의 일차 효과이며, 제1장에서 「빌려주지 않던 은행이 빌려주게 되는 것」이라고 표현한 그 효과다.
경로 ② 정보 생산 — 없던 거래이력을 만든다
덜 알려졌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한 경로다. 은행이 어떤 기업에 대출하지 않는 큰 이유 하나는 그 기업을 판단할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료는 거래를 해 봐야 쌓인다. 거래를 하지 않으면 자료가 안 쌓이고, 자료가 없으면 거래를 하지 않는다. 닫힌 고리다.
보증은 이 고리의 첫 거래를 성사시켜 준다. 그 거래에서 상환 이력이 생기고, 재무자료가 은행 시스템에 들어가며, 담당자가 그 기업을 알게 된다. 3년쯤 지나면 은행은 보증 없이도 그 기업을 판단할 수 있다.
이 경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지표가 있다. 보증 만기 후 무보증 재대출 비율이다. 이 비율이 높으면 보증이 정보를 만들어 냈다는 뜻이고, 0에 가까우면 보증이 영구적 보조금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무에서 이 지표를 잡는 기관은 드물지만, 성과를 설명할 때 가장 설득력 있는 숫자 가운데 하나다.
졸업률 — 잘 쓰이지 않는 좋은 지표
보증 만기 후 같은 기업이 보증 없이 대출을 받았는지를 추적하면 「졸업률」이 나온다. 이 지표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 준다.
첫째, 보증이 정보 생산 경로로 실제 작동했는가. 둘째, 보증 자원이 회전하고 있는가 — 졸업하지 않는 기업이 계속 보증을 받으면 신규 기업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다.
설계 단계에서 「보증 연장 횟수 상한」을 두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다만 상한을 너무 빡빡하게 두면 아직 자립하지 못한 기업이 절벽에서 떨어진다. 이 균형은 제6장 상품 설계에서 다시 다룬다.
경로 ③ 자본 절감 — 은행이 먼저 찾게 만든다
은행은 위험자산에 비례해 자기자본을 쌓아야 한다. 중소기업 무담보 대출의 위험가중치는 대개 100%다. 100억 원을 대출하면 100억 원이 위험가중자산이 되고,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려면 8억 원의 자본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대출에 정부계 보증기관의 보증이 붙으면, 보증받은 부분의 위험가중치를 보증기관의 위험가중치로 대체할 수 있다. 이를 신용위험경감(credit risk mitigation)이라 한다.
[도식 2-2] 자본 절감 경로 — 같은 100억 원 대출에 필요한 자기자본
[표 2-1] 자본 절감 효과의 계산 (예시)
구분 | 무보증 대출 | 보증부 대출 (보증비율 80%) | 차이 |
대출금액 | 100억 원 | 100억 원 | — |
무보증분 위험가중자산 | 100억 원 × 100% | 20억 원 × 100% = 20억 원 | — |
보증분 위험가중자산 | — | 80억 원 × 20% = 16억 원 | — |
위험가중자산 합계 | 100억 원 | 36억 원 | −64% |
필요 자기자본 (8%) | 8.0억 원 | 2.9억 원 | −5.1억 원 |
주: 보증기관 위험가중치를 20%로 가정한 예시다. 실제 적용 비율은 국가별 감독규정과 보증기관의 신용등급·정부보증 여부에 따라 0%에서 100%까지 달라진다.
이 표의 마지막 줄이 은행에게 갖는 의미는 크다. 5.1억 원의 자본이 풀린다는 것은 그 자본으로 다른 대출을 더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본 제약이 있는 은행일수록 이 경로의 매력이 크다. 실제로 자본 절감이 인정되는 나라에서는 보증기관이 은행을 설득할 필요가 거의 없다. 은행이 먼저 찾아온다.
반대로 이 경로가 인정되지 않으면 보증은 은행에게 「서류만 늘어난 상품」이 된다. 제1장 1.4절에서 본 거래비용 문제가 그대로 남고, 위험 이전 효과만으로는 창구 직원을 움직이기 어렵다.
현장에서 반드시 확인할 것
자국 은행감독규정에 다음 세 가지가 명시되어 있는지 조문 단위로 확인한다.
첫째, 보증기관이 적격 보증제공자(eligible guarantor)로 열거되어 있는가. 둘째, 적용되는 위험가중치가 몇 퍼센트인가. 셋째, 만기 불일치(보증 만기가 대출 만기보다 짧은 경우) 처리 규정이 있는가.
이 세 가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증기관을 먼저 세우면, 개소는 했는데 실적이 없는 상태가 몇 년 간다. 사업 설계 단계에서 감독당국과의 협의를 별도 과업으로 넣어야 하는 이유다.
2.2 어디에서 막히는가
세 경로 각각에는 고유한 차단 지점이 있다. 그리고 각 차단 지점을 확인하는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다.
[도식 2-3] 경로별 차단 지점과 현장 진단 질문
[표 2-2] 세 경로의 필요조건 · 차단 신호 · 대응
경로 | 작동하려면 | 막혔다는 신호 | 대응 |
① 위험 이전 | 은행이 보증기관의 지급능력과 지급 의지를 신뢰한다 | 보증서를 담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 보증부 대출에도 부동산 담보를 추가 요구한다 | 지급기한 명문화 · 재보증 도입 · 지급 실적 공표 (제10장) |
② 정보 생산 | 보증 만기 후 은행이 자체 판단으로 재대출한다 | 같은 기업이 5년째 보증을 갱신한다 · 졸업률이 0에 가깝다 | 연장 횟수 상한 · 졸업 인센티브 · 신용정보 연계 (제6장) |
③ 자본 절감 | 감독규정이 보증기관을 적격 보증제공자로 인정한다 | 은행이 보증부 대출을 무보증과 같게 처리한다 · 창구가 취급을 꺼린다 | 감독당국 협의를 사업 과업에 포함 · 규정 개정 기술지원 (제8장) |
2.3 보증이 하지 않는 일
세 경로를 정리했으니 반대편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보증이 하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알고 있어야 나중에 성과평가에서 곤란해지지 않는다.
[표 2-3] 보증에 자주 기대되지만 보증이 하지 않는 일
기대되는 것 | 왜 그렇게 되지 않는가 | 실제로 필요한 것 | ||
금리를 크게 낮춘다 | 은행은 절감된 위험의 일부만 차주에게 넘긴다. 실증연구에서 금리 인하 효과는 대체로 작게 나타난다. | 경쟁 촉진 · 조달비용 인하 · 보증료 자체의 인하 | ||
소액대출을 활성화한다 | 보증은 부도 손실을 줄이지만 심사 원가는 줄이지 않는다. 서류가 늘어 오히려 원가가 오른다. | 포트폴리오 보증 · 전산 연계 · 마이크로파이낸스 활용 (제9장) | ||
기업의 경영능력을 키운다 | 보증은 자금 접근만 다룬다. 사업계획·회계·판로는 별개 문제다. | 경영지도 · 컨설팅 사업의 병행 설계 | ||
모든 중소기업을 돕는다 | 제1장에서 보았듯 공식 부문 기업의 약 70%는 신용제약 상태가 아니다. | 대상 기준의 정교화 (제6장 · 제9장) | ||
제안서에 쓸 수 있는 문장과 쓰면 안 되는 문장
쓰면 안 되는 문장: 「본 사업을 통해 중소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금리 부담을 경감한다.」 — 두 개의 서로 다른 효과를 뭉쳐 놓았고, 두 번째는 실증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쓸 수 있는 문장: 「본 사업은 담보 부족으로 대출이 거절되거나 신청을 포기한 기업이 첫 거래를 성사시키도록 한다. 성과는 보증부 신규 거래 기업 수와 3년 후 무보증 재대출 비율로 측정한다.」
두 번째 문장은 겨냥하는 경로(① 위험 이전과 ② 정보 생산)를 명시하고, 각각에 대응하는 지표를 제시한다. 2~3년 뒤 평가에서 방어할 수 있는 형태다. | ||||
핵심 정리
1.
보증은 은행에게 세 가지를 준다. 위험 이전, 정보 생산, 자본 절감이다. 실적이 나오지 않을 때 보증비율부터 올리는 것은 세 경로 중 어디가 막혔는지 확인하지 않은 처방이다.
2.
위험 이전은 은행의 기대수익 곡선을 위로 밀어 신용할당선을 오른쪽으로 옮긴다. 이것이 보증의 일차 효과다.
3.
정보 생산은 보증부 첫 거래가 이력을 남겨 다음 거래를 보증 없이 가능하게 만드는 경로다. 졸업률(만기 후 무보증 재대출 비율)이 이 경로의 작동 여부를 보여 준다.
4.
자본 절감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을 줄여 자본을 풀어 준다. 다만 그 나라 감독규정이 보증기관을 적격 보증제공자로 인정해야만 성립한다. 인정되지 않으면 보증은 서류만 늘어난 상품이 된다.
5.
보증은 금리를 크게 낮추지 않고, 소액대출 원가를 줄이지 않으며, 경영능력을 키우지 않는다. 이 한계를 제안서에 미리 명시해야 성과지표가 현실적으로 잡힌다.
생각해볼 문제
1.
어떤 나라에서 보증제도를 도입했는데 은행이 보증부 대출에도 부동산 담보를 그대로 요구하고 있다. 세 경로 중 무엇이 막힌 것인가. 확인하려면 어떤 자료를 봐야 하는가.
2.
보증 만기 후 무보증 재대출 비율(졸업률)이 5%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실패로 볼 것인가.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어떤 반론이 가능한가.
3.
자본 절감 경로가 강하게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은행이 보증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이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무엇인가. 제7장의 위험이전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4.
보증기관의 위험가중치가 0%로 인정되는 나라(정부 전액 보증)와 50%로 인정되는 나라가 있다. 은행 행동은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재정 측면의 대가는 무엇인가.
5.
정보 생산 경로가 작동하려면 그 나라에 신용정보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신용정보원이 없는 나라에서도 이 경로가 작동할 수 있는가. 어떤 조건에서 그러한가.
6.
제안서에 「보증을 통해 대출금리를 3%p 인하한다」는 목표가 적혀 있다. 이 목표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고쳐 쓰겠는가.
논의 주제
아래 주제는 3~5인 조별 토론용이다. 각 조는 결론과 함께 「반대 입장에서 나올 가장 강한 반론」을 하나씩 정리해 발표한다.
주제 1. 보증은 보조금인가 시장 보완인가
보증이 정보 생산 경로로 작동해 기업이 졸업하면, 보증은 일시적 시장 보완 장치다. 반면 같은 기업이 계속 보증에 의존하면 사실상 영구 보조금이 된다. 그런데 개도국 현실에서는 졸업률이 낮은 경우가 많다. 이를 제도 실패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 나라 금융시장이 아직 그 단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장기 보조를 감수할 것인가. 감수한다면 재정 측면에서 어떤 장치가 필요한가.
주제 2. 자본 절감을 인정할 것인가 — 감독당국의 딜레마
감독당국 입장에서 보증기관을 적격 보증제공자로 인정하면 은행 대출은 늘지만, 보증기관이 부실해질 경우 그 위험이 은행 시스템으로 되돌아온다. 특히 보증기관이 정부 출연에 의존하고 감독을 받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인정의 조건으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개발협력 사업이 이 조건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가.
주제 3. 졸업을 강제할 것인가
연장 횟수에 상한을 두면 자원이 회전하고 신규 기업이 들어온다. 그러나 아직 자립하지 못한 기업은 절벽에서 떨어진다. 특히 경기 하강기에는 졸업한 기업이 곧바로 부실화될 수 있다. 상한을 둘 것인가, 둔다면 몇 회로 할 것인가, 예외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주제 4. 세 경로 중 하나만 작동해도 사업을 할 것인가
많은 저소득국에서는 위험 이전 경로만 작동한다. 정보 인프라도 없고 감독규정도 정비되어 있지 않다. 이 상태에서 보증사업을 하는 것은 정당한가. 아니면 나머지 두 경로를 여는 제도 정비를 선행 조건으로 걸어야 하는가. 공여기관의 시간표와 수원국의 시간표가 다를 때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PBL 문제해결 과제
과제 — B국 보증기금 실적 부진의 원인 진단
상황: B국은 3년 전 공여국 지원으로 중소기업 신용보증기금을 설립했다. 초기 자본 5,000만 달러, 보증비율 70%, 보증료 연 1.2%. 그런데 3년간 보증 공급액은 목표의 22%에 그쳤다.
수집된 정보: (1) 참여 은행 6곳 중 4곳이 보증부 대출에 부동산 담보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2) 대위변제 청구 12건 중 평균 지급 소요일이 147일이다. (3) 은행감독규정에는 「정부 및 공공기관의 보증」이라는 표현만 있고 보증기금은 열거되어 있지 않다. (4) 보증 만기 도래 기업 중 무보증 재대출을 받은 곳은 1곳이다. (5) 창구 직원 면담에서 「보증 서류가 은행 자체 서류보다 많다」는 응답이 반복되었다.
요구 산출물: (1) 다섯 개 정보를 세 경로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분류한 진단표, (2) 가장 먼저 손대야 할 문제 하나와 그 근거, (3) 향후 12개월 개선 조치 3개와 각각의 담당 주체(보증기금 / 감독당국 / 공여기관), (4) 「보증비율을 85%로 올리자」는 B국 재무부의 제안에 대한 의견과 논거.
분량과 형식: A4 3쪽 이내. 조별 작성 후 30분 발표. 평가는 진단의 정확성과 조치 순서의 논리성으로 한다.
실습
자국 또는 담당 대상국의 은행감독규정에서 보증의 취급 조항을 찾아 발췌해 온다. 확인 항목은 세 가지다. 첫째, 적격 보증제공자의 범위와 자국 보증기관의 포함 여부. 둘째, 적용 위험가중치. 셋째, 만기 불일치 처리 규정. 조문을 찾지 못한 경우 「해당 조항 없음」으로 기록하고, 감독당국의 어느 부서에 문의해야 하는지를 적는다. 조항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진단 결과다.
핵심 개념 | 위험분담 risk sharing · 부분보증 partial guarantee · 자본경감 capital relief · 위험가중치 risk weight · 대위변제 subrogation · 적격 신용위험경감 eligible CRM |
더 읽을거리
•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 Basel III: Finalising Post-Crisis Reforms (2017), 신용위험경감(CRM) 관련 조항. — 자본 절감 경로의 국제 기준.
•
Levitsky, J. (1997), “Credit Guarantee Schemes for SMEs: An International Review,” Small Enterprise Development 8(2). — 세 경로 논의의 고전적 정리.
•
Honohan, P. (2010), “Partial Credit Guarantees: Principles and Practice,” Journal of Financial Stability 6(1). — 부분보증의 설계 원리와 재정적 함의.
•
Calice, P. (2026), Global Anatomy of Credit Guarantee Schemes, World Bank. — 규제 지위감독 관련 조사 결과(제2.3절, 제2.4절).
•
World Bank·FIRST Initiative (2015), Principles for Public Credit Guarantee Schemes for SMEs, 원칙 4 및 원칙 — 감독과 위험관리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