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온라인 신용평가로 전환될 수 있는가 —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먼저 사용자 말씀이 맞는 부분부터. 대안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는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카카오뱅크의 자체 신용평가 모형 이용자 사례를 보면, 비은행 대출을 상환하면서 신용점수가 평균 35점 상승하고 비은행 잔액이 평균 440만원 감소하는 효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신규 대출은 통상 신용점수를 낮추는데 오히려 개선된 것이죠. 기존 신용점수가 못 잡아내던 사람을 데이터가 찾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1. 경성화는 비대칭적입니다
경성화되는 것은 이미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의 거래 흔적입니다. 카드 매출, 계좌 이체, 통신비, 부가세 신고. 그런데 관계형금융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정확히 그 흔적이 없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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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거래 위주 노점·재래시장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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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후 재창업자 (과거 데이터가 오히려 불리하게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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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축적될 시간이 없는 창업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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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주노동자
그리고 근본적 한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데이터는 과거만 담고, 신용 판단은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이 사장님이 업종 전환을 준비 중이고 후계자가 들어왔다"는 정보는 어떤 대안 데이터에도 안 나옵니다.
2. 그런데 이게 결정적인 반론입니다
만약 관계형금융이 온라인 신용평가로 완전히 대체 가능하다면, 상호금융은 존재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데이터 경쟁은 규모의 경제가 지배합니다. 데이터량, 모형 인력, 전산 인프라 모두 대형 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이 압도적입니다. 상호금융이 그 경기장에 들어가면 반드시 집니다. 조달비용도 높고 데이터도 적습니다.
즉 "온라인 신용평가로 전환하자"는 제안의 논리적 귀결은 상호금융의 발전이 아니라 상호금융의 정리입니다. 그건 일관된 입장이고 배제할 필요도 없지만, 무엇을 주장하는 것인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II. 지역에 국한할 필요가 있는가 — 두 가지 오해가 섞여 있습니다
오해 1: '관계'는 이웃 간 친밀도가 아닙니다
관계형금융에서 말하는 관계는 주민들 사이의 유대가 아니라 금융기관과 차주 사이의 반복 거래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알 필요는 없고, 담당자가 차주를 알면 됩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 신용금고가 공동체가 해체된 도쿄 한복판에서도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조합원끼리 서로 모르는데도 사업성 평가와 경영 상담이 이뤄집니다. 즉 공동체 해체가 관계형금융의 사망 선고는 아닙니다. 1960년대 마을금고 모델이 죽은 것은 맞지만, 그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원래 관계형금융이 아니라 공동체 담보 금융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해 2: 영업구역 제한의 기능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지역에 특화해야 정보 우위가 생긴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논거는 사용자 지적대로 실제로 약해졌습니다. 데이터가 지역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현재 영업구역 제한의 실질적 기능은 다릅니다. 역량 밖의 게임을 하지 못하게 막는 안전장치입니다.
한국은 이미 이 실험을 했습니다. 제한이 느슨해지자 상호금융은 지역 소상공인이 아니라 전국 단위 공동대출과 수도권 부동산 PF로 갔고, 결과는 8%대 연체율과 정부 합동 특별관리였습니다. 스페인 저축은행도 영업구역 제한 완화 후 전국 부동산에 집중했다가 붕괴했습니다.
즉 지역 제한은 이제 "정보 우위를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능력 없는 곳에서 큰 리스크를 지지 못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논거가 공격에서 방어로 바뀐 것이죠.
그렇다면 남는 정당화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둘밖에 없습니다.
1.
안전장치: 위에서 말한 리스크 차단
2.
금융 접근성 인프라: 은행 점포가 철수한 인구감소 지역에서 유일한 금융기관
그리고 2번은 상업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적자입니다. 앞서 정리한 계층 구조로 보면 이건 "민간 상업 영역"이 아니라 "공공이 감당할 영역"에 속합니다. 규제 완화 인센티브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명시적 재정 보상이 필요합니다.
III.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약인가 — 전제가 반대입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반대로 보셔야 합니다.
1. 연성정보는 대체로 규율 대상이 아닙니다
대면 상담에서 들은 사업 계획, 현장 방문에서 본 재고 상태, 담당자의 판단. 이건 데이터베이스화된 개인정보가 아니고, 여신 심사 목적으로 정보주체 동의 하에 수집됩니다. 관계형금융의 핵심 자산은 개인정보보호법이 막고 있지 않습니다.
2. 법은 오히려 열어주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2020년 데이터 3법 개정으로 가명정보 활용, 데이터전문기관을 통한 결합, 마이데이터가 제도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활용 현황을 보면 방향이 분명합니다.
가명정보 결합의 목적별 현황에서 CSS(신용평가시스템) 개발이 121건, 42.2%로 압도적 1위이고, 분야별로는 금융-비금융 결합이 54%로 금융 간 결합(46%)보다 많습니다. 핀테크 결제·고객 행동 정보와 은행 여수신 정보를 결합해 청년층 신용평가 모형을 개발한 사례가 대표적으로 소개됩니다.
즉 법적 통로는 이미 있고, 가장 많이 쓰이는 용도가 바로 신용평가 모형 개발입니다.
3. 진짜 제약은 법이 아니라 규모입니다
개별 새마을금고나 단위 신협이 데이터전문기관에 결합을 신청하고 모형을 개발하고 검증할 역량은 없습니다. 자산 수백억원짜리 조합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둘 수 없죠.
따라서 답은 중앙회 차원의 공동 인프라입니다. 앞서 언급한 금융위의 CSS 고도화 검토와 중앙회의 포용조합 지원 구조가 이 방향인데, 이게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개별 조합이 쓸 수 있는 공동 평가모형 + 지역별 보정 형태여야 합니다. 조합에 "각자 CSS를 만들라"고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4. 다만 반대 방향의 경고
정보 제약이 풀리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앞서 본 캄보디아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문제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자금 과잉이었고, 대출 심사가 쉬워질수록 다중채무가 늘었습니다.
데이터로 심사 비용이 낮아지면 대출이 늘고, 대출이 늘면 부채가 늡니다. CSS 고도화와 총부채 한도·다중채무 모니터링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만 하면 캄보디아형 결과가 나옵니다.
IV. 종합
세 질문의 답을 합치면 이렇게 됩니다.
상호금융이 지역금융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정보 우위" 때문이 아닙니다. 그 논거는 사용자 지적대로 실질적으로 약해졌습니다. 남은 근거는 훨씬 약합니다 — 역량 밖 리스크 차단과 지역 금융 접근성 유지. 둘 다 "돈이 되니까"가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에 속합니다.
그래서 정직한 선택지는 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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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형태를 유지하되 조건을 갖춘다 — 지배구조 개혁 + 감독 일원화 + 중앙회 공동 데이터 인프라 + 인구감소 지역에 대한 명시적 재정 보상. 일본·독일 경로이고, 20년 단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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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형태를 정리한다 — 경쟁력 없는 조합을 합병·전환하고 은행 체계로 흡수. 관계형금융은 포기하고 온라인 심사로 통일.
지금 한국은 A의 절반만 하고(인센티브는 주되 지배구조와 재정은 회피), B는 정치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게 가장 나쁜 조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중화가 답이라고 봅니다. 자산 규모가 크고 도시에 있는 조합은 사실상 소형 은행이므로 은행 수준의 규제와 지배구조를 적용하고, 인구감소 지역의 소형 조합은 관계형금융과 금융 접근성 유지를 명시적 임무로 부여하되 그 비용을 공적으로 보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조합을 같은 틀로 다루려 하니 어느 쪽도 안 되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