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캄보디아 프라삭(PRASAC) — 개발프로젝트에서 상업은행까지
출발점: EU 원조 사업
프라삭은 1991년 파리평화협정 이후 캄보디아 재건을 돕기 위해 1995년 유럽연합의 개발 프로젝트로 설립되었습니다. 이름 자체가 그 흔적입니다. 프랑스어 약자로 "캄보디아 농업부문 재활·지원 프로그램(Programme de Réhabilitation et d'Appui au Secteur Agricole du Cambodge)"이며, 프놈펜 인근 6개 주의 농업 부문 재건을 위해 EU가 자금을 댄 NGO로 출발해 2002년 캄보디아 중앙은행에 등록된 신용사업자로 전환했습니다.
전환 경로
시기 | 단계 | 성격 |
1995 | EU 개발 프로젝트 | 무상 원조 |
2002 | 중앙은행 등록 신용사업자 | 준금융기관 |
2000년대 중반 | MFI 라이선스 → MDI(예금수취 가능) | 규제 금융기관 |
2008 | 지분 90%를 외국 주주에게 이전 | 상업 자본 진입 |
2010년대 | IFC·ADB 등 개발금융기구 투자 | 개발금융의 재진입 |
2020~21 | KB국민은행 100% 인수 | 외국 상업은행 소유 |
2023 | 상업은행 전환 | 마이크로파이낸스 졸업 |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개발금융이 두 번 개입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EU 무상원조로 기관을 만들었고, 상업화된 뒤에는 IFC·ADB가 투자자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IFC는 2022년에도 최대 8천만 달러 규모의 3년 만기 선순위 대출(자기계정 5천만 달러 중 현지통화 2천만 달러 포함, 추가 3천만 달러 동원)을 승인했고, 그 목적으로 MSME 금융 접근성 개선, 책임금융 관행 개선, 기후금융 확대를 제시했습니다.
한국의 진입
KB국민은행은 2019년 12월 이사회에서 프라삭 지분 70% 인수를 결의했습니다. 인수가격은 6억 340만 달러(약 7,020억원)였고, 당시 프라삭은 MDI 시장점유율 41.4%, ROE 29.4%, 순이자마진 8.3%, 순이익 약 7,8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2021년 10월 잔여 지분을 인수해 100% 자회사가 되었고, 2020년 순이익은 1억 900만 달러, MFI 시장점유율 44.6%로 대출시장 1위, 전체 금융기관 기준 4위였습니다.
즉 EU의 농업 재건 원조로 만들어진 조직을, 25년 뒤 한국 은행이 7천억원에 사들인 것입니다. 개발금융이 만들어낸 자산을 후발 공여국의 민간 자본이 인수한, 상당히 상징적인 거래죠.
현재 상황은 KB프라삭은행이 상업은행으로 전환된 뒤 2025년 고정이하여신비율이 5.95%까지 상승해 건전성 우려가 제기되었고, 2026년 1분기 순익 562억원으로 반등한 상태입니다.
II. 그러나 이 사례는 실패 사례로도 인용됩니다
여기가 핵심입니다. 같은 사례가 개발금융의 성공 서사이자 가장 심각한 책무성 실패 사례로 동시에 인용됩니다.
과잉부채 위기
캄보디아는 1인당 마이크로파이낸스 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고, 이 부문은 IFC 투자와 '포용금융' 서사를 기반으로 팽창했습니다. 평균 대출 규모가 캄보디아인 95%의 소득을 초과하며, 마이크로론이 차입자의 토지증서를 담보로 잡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IFC 책무성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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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LICADHO와 Equitable Cambodia가 6개 IFC 지원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ACLEDA, Amret, Prasac, Hattha Bank, LOLC, Sathapana) 차입자 18명을 대리해 IFC 감사기구 CAO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IFC는 13개 활동 프로젝트에 걸쳐 금융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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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O는 4년에 걸쳐 강제 토지 매각, 가족의 결식, 아동의 학업 중단과 노동 투입, 부채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자살을 기록했고, 크메르어 대출 서류를 읽지 못하는 원주민 공동체에서 특히 심각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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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O 조사 결과 IFC는 투자 전 실사와 사업 감독 모두에서 지속가능성 프레임워크를 준수하지 않았으며, 과잉부채와 사회적 피해 위험이 알려져 있었음에도 마이크로파이낸스 차입자에 대한 영향을 자사 환경·사회 정책의 적용 범위 밖으로 간주했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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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6년 6월 24일 IFC 이사회는 CAO의 결론을 거부했습니다. 18명 진정인을 위한 '특별 관리조치 계획'(현지 조력자 고용, 대출 재조정·상환 유예·금리 조정)은 승인하면서도, 환경·사회 지속가능성 정책 위반은 없었다고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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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가 채택한 논리는 마이크로파이낸스 차입자가 지속가능성 정책상 "영향받는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IFC는 캄보디아 농민에게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ACLEDA에 대출한다는 논리죠.
KB프라삭도 이 사슬 안에 있습니다
KB프라삭은 2024년 6월 제기된 일련의 진정에 따라 IFC 조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IFC가 마이크로파이낸스 강화기구(MEF) 보유를 통해 KB프라삭에 투자했기 때문이며, 2025년 3월 IFC는 네 건 중 한 건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구조가 중요합니다. 한국 은행이 소유한 기관에, IFC 자금이 다자 펀드를 경유해 들어가 있고, 그 결과 국제 책무성 절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국 금융기관이 개발금융의 책무성 체제에 사실상 편입된 첫 사례에 가깝습니다.
III. 다른 대표적 연결 사례들
프라삭이 예외가 아니라 표준 경로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그라민은행(방글라데시): 1976년 시범사업이 1983년 은행으로 법제화되기까지 IFAD, 포드재단, 노르웨이·스웨덴 등 공여기관 자금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원조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기관입니다.
CGAP(1995): 세계은행 주도로 공여국들이 만든 컨소시엄. 자금 제공보다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규제 표준과 성과 지표를 만든 것이 더 큰 영향이었습니다. 개발금융이 자금이 아니라 규범으로 개입한 사례.
ProCredit Holding: 독일 IPC와 KfW, IFC, EBRD 등 개발금융기구 출자로 만들어진 다국적 마이크로·중소기업 금융그룹. 동유럽·중남미·아프리카에서 동일 모델을 복제한 경우입니다.
Compartamos Banco(멕시코): 공여·IFC 자금으로 성장한 뒤 2007년 상장. 실효금리가 연 10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빈곤 완화인가 폭리인가"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상업화 비판의 원형입니다.
SKS Microfinance(인도): 2010년 상장 직후 안드라프라데시주에서 과잉대출과 강압적 회수, 차입자 자살이 사회 문제화되어 주정부가 조례로 상환을 중단시켰고, 인도 마이크로파이낸스 부문 전체가 붕괴 위기를 겪었습니다. 캄보디아 사태의 15년 전 예고편이었습니다.
MEF·MIV 구조: 캄보디아 MFI들은 IFC·ADB 같은 다자기구뿐 아니라 KfW, FMO, Proparco, Finnfund, Norfund, OeEB, SIDA 등 유럽 국가개발기구, 그리고 유럽·미국 민간 투자자로부터 수억 달러를 계속 받아왔습니다. 공적 자금이 펀드를 거쳐 민간처럼 흘러가는 이 구조가 현대 개발금융-마이크로파이낸스 연결의 주된 형태입니다.
IV. 이 사례들이 앞선 논의에 주는 함의
1. "개발금융이 만들고 민간이 인수한다"는 경로는 실재합니다
앞서 한국 민간의 아프리카 진출을 논의하면서 "개발금융이 닦아놓은 길에 민간이 들어간다"는 구조를 말씀드렸는데, 프라삭이 정확히 그 사례입니다. 다만 25년이 걸렸습니다. 개발금융이 시장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현실적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상업화 이후 개발 목적은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프라삭은 농민을 위한 기관으로 시작해 ROE 29.4%를 내는 자산으로 끝났습니다. 수익성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개발 목적을 강제하는 장치가 소유 이전 과정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매각 계약에 개발 성과 조건이 붙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3. 금융중개기관(FI) 투자의 책무성 공백
IFC가 "우리는 농민이 아니라 은행에 대출한다"는 논리로 책임을 부인한 것은 개발금융의 구조적 약점을 드러냅니다. 앞서 논의한 혼합금융·민간동원이 확대될수록 자금과 최종 수혜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그만큼 책임 소재가 흐려집니다. 도구가 정교해질수록 책무성이 약해지는 문제죠.
4. 아프리카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KOTRA가 아프리카 유망 분야로 디지털 경제와 AI 확산을 꼽았는데, 아프리카의 디지털 대출은 캄보디아형 과잉부채 위험을 훨씬 빠른 속도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대출 심사가 알고리즘화되면 확산 속도가 오프라인 MFI와 비교가 안 됩니다. 캄보디아가 15년에 걸쳐 겪은 일이 아프리카에서는 3~5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5. 한국에 대한 구체적 시사점
한국 금융기관은 이미 이 영역에 들어와 있는데, 개발금융의 책무성 규범은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KOICA·EDCF와 KB·우리 등 상업은행의 해외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이 서로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죠. 앞서 말한 분절화가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향후 한국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포용금융을 개발협력 성과로 내세우려면, 차입자 보호 기준(총부채 한도, 담보 관행, 회수 절차)을 사전에 내부화해두는 것이 필수입니다. 지금은 국제 진정 절차가 제기될 때 대응할 체계가 없습니다.